요즘 나의 포지션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봤다. 일이 들어오면 패션 트렌드 분석가이자 엄마이고, 일이 없을 땐 그냥 엄마. 그래서 일이 바쁠 땐 어떻게 해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일이 없을 땐 나의 쓸모와 사회적 존재가치에 골몰한다.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든 건 내가 엄마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엄마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은 걸까.
친환경적인 생활은 내 삶의 전체적인 방향이지만, 가끔 취미 혹은 취향 정도의 취급을 받을 때가 있다. 환경에 대해 ‘네가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서운하고 오해한다. 상대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인지에 상관없이 거대한 세계를 사소하게 만드는 그 은근한 뉘앙스를 견디지 못한다. 취향은 아주 멋진 단어임이 분명하지만 종종 예쁜 물건을 고르는 기준으로만 치부되곤 하기에 나에겐 취향보다 더 광범위한 표현이 필요하다.
나의 최종적인 목표는 덕업일치가 아닌 가치관과 업이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의 일부로 취향이 적당히 자리 잡길 바란다. 한때는 좋아하는 걸 잘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적절한 업의 모습이라 여겼는데, 사회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돈벌이로서의 업'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거나 버티는 그 모든 밑바탕엔 워라벨을 비롯해 내가 좋은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끝내 그 확신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내야만 하는 강한 이유가 없었다. 몇몇의 회사들은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의 목표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당기려 애썼지만, 결코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일을 통해 부여받은 미션을 내 삶의 목표로 정해버리면 마음은 편하다. 내가 잘 가고 있다는 확신을 빌미로 더욱더 나를 갈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않고도 착각을 지속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이익을 향하는 회사의 비전은 결코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원하는 건 업의 전환이다. 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것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돈은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므로 경제적 가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돈이 되고 안되고의 기준이 모든 걸 판가름할 수는 없다. 돈이 없어도 지속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어야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입의 바이오리듬을 견뎌내며 계속 돈을 버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저 재미만으로 버텨낼 수는 없는 게 업의 무게다. 그런데 또 동시에 재미도 있어야 되는 거지.
전국에 제로웨이스트샵 사장님 중에 이게 돈이 되겠다 싶어서, 이거 잘하면 부자 되겠다 싶어서 시작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굳이 굳이 사양산업으로 들어가 판을 벌리는 독립서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도 안 되게 그 길을 간다. 어떻게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고민하고 선택하며 고군분투한다.
'친환경적인 삶'이라는 이 다급하고도 중차대한 지향점을 당연하게 밑바탕에 깔고 그 위에 내가 재미를 느끼고 지속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를 설레게 하는 선순환적인 활동이 무엇일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또 무엇일까. 나의 가치관으로 취향과 관심사와 잘할 수 있는 것을 엮어내는 일.
나는 지속가능한 로컬 큐레이터가 되어야겠다.
'지속가능한'은 당연히 경제적 지속 가능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소비를 건강한 소비로 전환하고, 깨끗한 지구 환경 속에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게 하는 방향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영감이 되고 문화로 확장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모으고 고르고 소개하는 안내자가 되고 싶다. 로컬은 지속가능함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다. 자원순환의 거점이 되고 개인의 실천을 확장시키는 모든 제로웨이스트샵은 로컬로써 존재한다. 로컬스러움이기도 하다. 매일 주인의 손맛으로 소량씩 구워내는 비건 빵집의 그 소소함과 개성은 외면당하고 사라지기엔 정말이지 너무나도 매력적인 로컬이다.
100일 동안 대중교통으로 비건 식당만 투어하고 다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 싶다. 아주 작은 동네 제로웨이스트샵의 자급자족을 주제로 한 전시를 밀도 있게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중고 물건을 내놓고 교환하는 플리마켓이란 플리마켓은 전부 다 가서 구경하고 싶다. 환경이라는 외면할 수 없는 거대한 담론을 작품으로 내놓는 작가들의 메시지를 수집하고 싶다.
그럼 돈은?
일단 하고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