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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10. 2022

불완전 비건 지향자와 논비건의 지지고 볶는 공존


우리 가족은 비건 지향자인 나, 논비건 남편, 그리고 채식 비중이 높은 논비건 3세 아이로 구성되어 있다. 구분을 위해 굳이 다르게 설명했지만 함께 사는 가족이니만큼 비건과 논비건 사이 그 어딘가쯤에서 대충 합의를 보는 일이 많고 각자의 식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남편은 일반적인 논비건에 비해 고기를 저게 먹는 편이며, 우리 아이는 플렉시테리언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의 비건 지향은 이들과 함께 하기에 더욱더 불완전하게 지속된다.


식생활에 관한 지향점이 다른 남편과 공존하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가족은 끼니를 함께 하는 '식구(食口)'를 의미하는 데 식성을 비롯해 식에 관한 가치관이 다르니 어찌 평탄할 수 있겠는가. 비건인 남편의 의사를 존중하자니 나의 비건 지향이 자꾸 흔들리고 내 기준대로 하자니 남편의 선택권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어느 날 남편은 약간은 강요받고 있는 것 같다는 식의 표현을 했고 나는 씁쓸하게 한 발 더 물러서기로 했다. 조금 더 타협하는 몇 주간을 살았는데 기분이 아주 묘했다. 남편과 나의 휴전선은 잘 지켜졌으나 그것이 누구를 위한 평행선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내가 억지로 2년째 담배를 끊고 있는 금연자라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남편이 내게 흡연을 권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앞에서 자꾸만 흡연을 하고 눈에 띄는 곳에 담배를 올려놓아 나도 모르게 한 개비, 두 개비 입에 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금연은 실패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아직 나의 비건 레벨이 높지 않은 탓인지 몰라도 그 은근한 간접흡연이 자꾸 나를 무너지게 만든다. 조금도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잘 유지하는 때도 있다. 그럴 땐 정말 고기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계란 하나, 라떼 한 잔, 남편이 구운 고기 한 점이 야금야금 나를 유혹한다. '그래 어차피 산 건데 남기면 쓰레기 되고 내가 한 점 먹는다고 해서 소비에 달라질 건 없을 거야.'라며 핑계를 대고 싶다. 그 명분에 숨고 싶다.


나의 현실은 플렉시테리언일까 페스코 베지테리언일까. 그래도 난 고집스럽게 '비건'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불완전'이라는 단어로 나의 완벽하지 않음을 수식할지언정 비건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최대한 비건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것이 나의 실천 방식인데, 이걸 비건의 단계별로 선을 긋는다는 게 어쩐지 불편하다. 끼니라는 건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세 끼, 1년 365일 계속되는 건데 어떤 하나의 상황만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 페스코라고 말하면 비건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페스코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게 동력이 된다면 괜찮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다. 노력하는 불완전 비건 지향자들에게 논비건인들이 들이대는 검열의 잣대도 영 거슬린다.


본격적으로 비건을 지향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건 2021년 1월이었다. 해가 바뀌면 하는 다짐들 중 유일하게 2년째 지키고 있는 실천이다. 처음엔 더 완벽했다. '비건'이라는 기준을 지키기 위해 고기는 물론 계란도, 우유도 먹지 않았다. 친정 엄마가 집에 오셔서 음식을 해주실 때 육수용 멸치라도 꺼내면 인상을 찌푸렸다. 남편이 고기에 '고'자만 꺼내도 기분 상한 티를 팍팍 내며 입을 닫아버렸다. 뭔가를 시작하면 계획에 따라 제대로 하고 지키고 싶어 하는데 가족들은 자꾸 내가 정한 선을 넘는 방해꾼인 것 같았다. 육아를 도와주러 오시는 엄마에게도, 늘 날 배려하는 남편에게도 고집스럽게 짜증을 냈다. 그만큼 잘 몰랐고 고집스러웠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런 식으로는 오래 지속할 수 없겠다 싶었다. 가정의 평화와 나의 이너피스를 위해 현명한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내가 한발 물러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생각이 되면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왜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나만 느껴야 하지. 왜 나만 실천하고 있지. 왜 이걸 내 '취향' 따위로 치부하는 거지.


또 하나의 힘겨운 투쟁은 '요리'였다. 처음부터 요리를 싫어했다. 요리를 좋아하면 우리네 엄마들의 삶처럼 살림하는 여성의 삶을 살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마침 반갑게도 남편은 요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보다 월등히 잘했다. 상대적 박탈감은 나의 요리 실력을 더욱더 퇴보시켰고 그렇게 우리 집 요리 담당은 남편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열렬한 마음속 투쟁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의 첫 18개월을 가정 보육을 하면서 나는 천천히 이유식에 영혼을 갈아 넣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채식 생활이 시작되었고 점점 남편의 요리가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 남편 요리 특유의 기름지고 짠맛이 건강한 채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갖 해산물, 크림소스 다 넣어놓고 날 위한 비건식이라고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도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요리를 담당하자니 그것도 스트레스였다. 누군가에게는 요리가 힐링이라는데 내게는 결코 담당하고 싶지 않은 조별 과제 같은 느낌이었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미완성이다. 명확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적당히 각자가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공존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또 상대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이 되면 그날은 넌덜머리가 나도록 지지고 볶는다. 그래도 나는 지치지 않고 아빠를 30년간 전도한 엄마를 떠올린다. 남편이 먹는 고기를 바라보다 참지 못해 한 점을 먹고야 마는 날도 있고 온 가족을 이끌고 비건 맛집을 찾아가는 주말 오후도 있다. 모순의 총집합이다. 그래도 나는 너무나 확실하게 불완전한 비건 지향자다. 누군가 나의 모순을 엄격한 잣대로 지적한다고 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니까. 


내년, 내후년엔 얼마나 더 잘 실천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아이는 클 테고 상황은 시시각각 변할 테니. 그래도 언제나 모두에게 무해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지향하는 나의 방향성만큼은 여전할 예정이다. 결코 고개를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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