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안방 구석 모서리에 우산을 펴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들어가 앉아있던 기억이 난다. 넓은 방을 놔두고 왜 좁디좁은 나만의 동굴을 만들려고 했던 걸까. 그때 느꼈던 안락함의 감정은 아직도 기억난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엄마 품처럼 밀착된 공간이 필요했던 걸까.
자라나면서 작은 우산 속 공간은 내 방이 되었고 결혼 후엔 집과 작업방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제 나에겐 매일 출근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 지금의 공간들은 모두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이다. 집은 아이와 함께 공유하고, 작업방은 남편과 함께 쓰며, 상점은 함께 운영하는 동업자와 방문하는 손님들로 채워지고 있다.
공간 안에서 자꾸만 오롯이 혼자이고 싶으면서 동시에 함께 하고픈 모순적인 마음이 자라난다. 사회성을 학습한 어른이 되어 그런 걸까. 공간에 애착을 갖게 되며 생겨난 마음일까. 내가 추구하는 공간은 어떤 모습인 걸까.
예전엔 인테리어가 곧 공간이라고 착각했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여겼다. 오롯이 시각적인 새로움에 좌지우지되던 시절이다. 페인트의 색, 독특한 디자인의 가구, 극단적으로 정돈된 모습에 매료되었다.
지금은 아니다. 완전히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니다. 공간을 완성하는 건 결국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표정과 소리, 온도 같은 것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와 정서라고 믿는다. 그 공간에서 보낸 시간과 사람들이 좋았다면 충분히 좋은 공간이다.
내가 바라는 공간은 과하지 않게 적당히 소담스러운 모습이다. 완전히 사적인 순간을 바라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길 원한다. 창문을 반쯤 열여 두고 책상에 앉아있으면 간간이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들이 문을 열고 살며시 들어올 수 있는 그런 공간. 나의 세계가 너무 침범 당하지도 외롭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경계선.
그러고 보니 공간은 곧 마음인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