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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19. 2024

“너무 더워요. 시원하게 해주세요.”




이렇게까지 더운 게 맞는 거야?



장마가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폭염은 입추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낮 최고 기온 35도까지 오르는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여름은 원래 더운 거라고 하기엔 예전보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햇살이 이렇게 따갑지 않았고 숨 막힐 듯 후덥지근한 공기가 아니었다. 

14년 전쯤이었나 대만 여행 갔을 때 공항에서 느꼈던 습도와 온도가 기억난다. 따뜻한 공기가 건물 안으로 훅 들어와 온몸을 감쌌던 그 더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열대 지역에서만 느껴지던 공기가 이젠 우리 동네 내 집 앞에도 진동한다. 어릴 땐 본 적 없는 러브버그가 날아다니고 불빛 때문에 밤을 낮이라 착각한 매미는 밤새 울어댄다.



2004년 8월 날씨



문득 20년 전 오늘의 날씨가 궁금해져 기상청 사이트에 들어가 2004년 8월을 검색해 봤다. 2004년 8월 19일의 최저기온 19.1도, 최고기온 25.3도. 8월 14일을 기점으로 최고 기온은 20도 대로 내려오고 기온이 차츰 서늘해지는 걸 알 수 있다. 

그랬다. 휴가는 늘 가장 덥고 놀기 좋은 8월 첫 주에 즐겼고 중순이 넘으면 쌀쌀해 바닷가에 들어가지 못해 아쉬워했다. 




2024년 8월 19일 서울 날씨



20년이 지난 오늘의 날씨는 오전 10시 기준으로 벌써 30도를 넘어섰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낮 최고 기온 35도까지 치솟는 그래프를 보고 있자니 외출이 두려워진다. (이미 땀 뻘뻘 흘리며 도서관에 왔지만, 다시 집에 돌아가는 길이 무섭다.) 한숨이 나오는 건 저녁 6시가 되어도 여전히 33도라는 거다. 밤 10시가 넘어야 30도 대를 벗어난다. 낮에 더워진 공기가 가라앉지 않는 거겠지. 

이게 맞는 걸까. 이걸 자연스러운 계절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이번 겨울은 또 얼마나 더 추울까.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아이


아이들은 원래 열이 많다고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그보다 조금 더 체온이 높은 편인 것 같다. 아토피는 졸업했지만 예민한 피부 체질이라 그런 걸까. 추운 겨울엔 외투를 벗어던지고 더운 여름은 유난히 힘들어한다.

6월쯤부터 냉장고 문이 닳도록 열어 대며 아이스크림을 찾고 잘 땐 아이스팩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자다가 깨서도 발바닥이 가렵다고 아이스팩을 발에 대기 일쑤였다.

아침에 유치원에 갈 땐 버스를 타고 하원할 땐 직접 데리러 가서 공원을 지나 집으로 걸어온다. 퇴근 시간이 조금씩 다른 내 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와 함께 나무와 풀이 많은 공원을 매일 손잡고 걸어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공원은 언제나 귀가를 늦추는 마의 구간이 되었다. 곧 저녁 먹을 시간인데 빵을 사달라고 한다거나, 더 놀다 가겠다고 하며 떼를 쓰는 구간. 아니 그 정도는 애교다. 더워서 못 가겠다며 걷기를 거부해버리면 방법이 없다. 안아주길 바라겠지만 무거운 21kg의 다섯 살을 어찌한단 말인가. 게다가 내 어깨는 이미 내 가방과 아이의 유치원 가방으로 충분히 무거운데.






“너무 더워요. 시원하게 해주세요.”




너무 더운 날 울면서 내게 시원하게 해달라고 하는 아이. 떼쓰는 모습에 화가 나고 지쳐 한숨을 푹푹 쉬다가 문득 해결해 줄 수 없는 그 말이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시원하게 해달라고 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작정 떼쓰는 모습에 혼을 냈더니 아이는 더위에 지친 건지 속상해서 정신이 혼미해졌는지 공원 벤치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의 다섯 살 여름과는 확연하게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아이. 그동안 내가 살면서 만들어낸 무수한 탄소들이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지구 어딘가를 떠돌며 아이의 계절을 더 덥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 더워질 날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땐 얼마나 더울까. 아니 뜨거울까.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울부짖으며 내게 덥다고 말하는 그날이 올까.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개를 푹 숙인 채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 난 뭘 할 수 있을까.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뿐




이미 돌이킬 수 없다 해도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처럼 오늘을 살아낼 수는 없는 노릇. 묵묵함과 인내는 부모의 덕목인 것일까. 모든 화살이 부메랑처럼 원망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말이다.

아침 출근길에 과일주스를 얼려 만든 아이스크림과 조그마한 아이스팩을 면주머니에 담아 챙겨갔다. 하루 종일 꽁꽁 얼린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팩을 오후에 유치원에서 만나자마자 내밀었다. 하원 때마다 무슨 간식 가져왔냐고 기대하며 묻는 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배시시 웃으며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팩을 낚아채는 모습에서 만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뜬금없이 아이스팩이 든 면 주머니를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음~ 친환경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래 면 재질이긴 하지. 덕분에 웃었다.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럼에도 하원길이 너무 더워 아이는 힘들어했지만 다행히 뻗어버리지는 않았다. 

이번 달은 에어컨을 자주 틀었다. 에너지는 아끼려는 나의 노력은 아이와 남편 앞에서 무너졌다. 그나마 찾은 대안은 넓은 거실이 아닌 안방에서 벽걸이 에어컨을 틀고 셋이서 먹고 자는 원룸 시스템이다. 넓은 집에서 방 하나에 모여 옹기종이 생활하는 게 우습고, 주방에서 요리할 땐 미치도록 덮지만 그래도 이게 최선의 차선책이다.

에어컨 앞에 서서 선풍기를 트는 아이에게 “너무 더운 게 아니라면 하나는 끄는 게 어떨까? 북극곰이 너무 아플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북극곰이 아프다는 말은 내가 제일 꺼려 하는 뻔한 말이었는데 참다못해 튀어나왔다. 

그런데 아이가 되물었다. 

“빙하가 녹아서 북극곰이 살 곳이 없어져? 에어컨보다 선풍기가 더 에너지 많이 드는 거야?”

“아니. 에어컨이 훨씬 더 많이 들지. 에어컨을 끌 수 있다면 끄면 좋고 힘들면 선풍기라도 끄자.”

“선풍기를 끌래.”

“알겠어.”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덥다.

아마도 가장 시원한 여름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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