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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16. 2024

쓰레기 없이 케이크를 샀다! 용기내 챌린지 성공기



용기내 챌린지 4년 만에 케이크 전용 용기가 생겼다.




용기를 낸 지 만 4년, 어언 5년 차에 들어섰다.


이제 용기는 내게 일상이자 습관이 되었다. 4년이라는 시간은 나를 더욱 담대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이제 내게 마음의 용기는 필요 없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다회용기만 있으면 된다.


누구나 집에 다회용기가 있기 때문에 굳이 용기를 내기 위한 전용 용기를 따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주로 밀폐용기를 사용했고 냉동식품을 사면 따라오는 지퍼백도 비닐이 튼튼해 유용했다. 집에 있는 모든 크기와 소재의 통이란 통은 다 끌어모아 적재적소에 사용해왔다.


용기내 챌린지에서 난이도가 비교적 어려운 편에 속하는 항목은 케이크다. 케이크는 다른 음식에 비해 흐트러질 위험이 있어 수평으로 들어야 하고 용기 안에 똑바로 넣어야 한다. 케이크의 사이즈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밑을 받치고 있는 사각 판이 들어갈 만한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적당한 용기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계속했다. 딱 맞는 용기는 없었지만 역시나 또 가능한 모든 것들을 활용해 어찌어찌 용기를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주문한 적 없는 택배가 도착했다. 사각형의 플라스틱 통이었고 맨 위에 손잡이가 있었다. 누가 봐도 케이크 보관함이었다.


이게 뭐지. 남편이 의논도 하지 않고 주문한 거라 당황스러웠다. 왜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샀냐고 물으니 온갖 항변을 다 늘어놓았다. 오랫동안 고민했고 꼭 가지고 싶었고 의논하면 결국 또 못 사게 될 것 같았고 케이크는 특별한 날 먹는 거기에 밑에 받침도 있어 보이는 걸로 마련해 종이로 된 케이크판 쓰레기까지 줄일 수 있을 거라는 남편의 길고 다채로운 대답.


네. 잘 알겠습니다.

백기 든다.


이러한 연유로 내게도 케이크 전용 용기가 생겼다. 이 사소한 물건 하나가 내게는 너무도 특별하고 의미 있다. 지난 4년간의 용기 냈던 흔적들을 정리하고 대망의 쓰레기 0을 달성한 용기내 챌린지의 완성형을 이렇게 구구절절 써 내려가고 싶을 만큼.





용기 냈던 것들의 목록


처음으로 용기내 챌린지를 시도했던 건 2020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지금은 먹지 않는 고기를 일회용기가 아닌 다회용기에 포장해오기 위해 식당에 미리 전화해 어떤 용기를 언제쯤 가져가야 좋을지 문의하며 고군분투했던 기억. 처음이라 떨리고 식당 사장님의 눈치도 보이고 어떤 용기를 가져가야 할지 난감했다. 나름 뿌듯했음에도 완벽할 수 없음에 탄식했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4년이 넘도록 많은 음식과 식재료들을 쓰레기 없이 구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되든 안되는 용기를 내밀었다. 성에 차지 않은 적은 있었으나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적은 없었다.


‘나 이런 것까지 해봤다.’의 느낌으로 그간의 실천들을 정리해 본다.



커피와 음료는 텀블러에



용기내 챌린지의 가장 기본이 되고 많이 알려진 텀블러 사용하기.


카페는 용기 내기 가장 편한 곳이다.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마시는 사람들도 많고 직원들도 텀블러를 내밀었을 때 당황하지 않는다. 텀블러의 사이즈가 일반적인 카페에서 파는 음료의 양에 맞춰져있어 넘칠까 모자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빵은 밀폐용기, 지퍼백 등 다양하게 활용 가능



빵도 비교적 용기 내기 편하다. 모양이 잘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에 밀폐용기도 편하지만 지퍼백에 담아도 문제가 없다. 베이커리에 준비된 트레이에 빵을 담을 후 계산할 때 "여기에 담아 갈게요."라고 말하면 되기 때문에 타이밍도 놓치지 않을 수 있고 민망할 일도 적다.



채소는 주머니, 에코백, 지퍼백에



은근히 용기 내기 어려운 게 바로 채소다. 일반 마트에 파는 채소들은 이미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포장이 되어 있어 용기를 챙겨가도 좌절한 적이 많다.


그.러.나.


채소나 과일을 무포장으로 사기 좋은 최적의 장소가 있으니 그건 바로 시장이다. 나는 관광시장 말고 지방의 오일장이나 로컬 시장을 사랑한다. 신선한 채소를 그 자리에서 준비된 주머니에 담아 살 수 있다.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비닐이 아닌 준비된 주머니나 에코백을 꺼내는 모습을 생소하게 여기는 상인분들도 있지만 그 역시 좋게 봐주신다.


"아이고 알뜰하네~ 환경 생각하는 구먼~ 그래야 되는데~"

라며 낯선 장면에 호감을 표현해 주신다. 어르신들 칭찬 듬뿍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여행 갈 때 꼭 들리는 곳이 바로 오일장이다. 디저트보다 채소, 과일, 견과류 등의 식재료를 주로 판매하는데 새벽 시장에서 무포장으로 채소와 과일을 사서 숙소에 돌아와 그 자리에서 먹는 과일과 감자, 고구마의 맛은 정말 최고다. 전주 도깨비시장에서의 행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기서 진짜는 거상이 아니라 바닥에 조그맣게 여러 가지 종류의 채소를 펼쳐놓은 할머니들이다. 유기농 인증 확인할 길은 없지만 대부분 작은 텃밭에서 이것저것 길러서 가지고 나오신 거고 토종콩 같은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



최애 김밥은 밀폐용기가 최고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인 김밥은 용기 내기 아주 편한 음식이다. 집에 있는 웬만한 반찬통들이 김밥을 담기에 적합하다. 높이가 낮고 넓적한 직사각형의 밀폐용기라면 모두 김밥 용기내 챌린지를 시도해 볼 만하다.


우리 가족은 피크닉 갈 때 꼭 김밥을 싸가는데 시간이 없을 땐 단골집에 들러 김밥 3-4줄을 용기에 담아 가져간다. 김밥집은 웬만하면 단골집을 만들어놓는 게 좋다. 이제 용기만 봐도 알아서 끄덕이고 담아주신다.  



아이스크림은 다회용 컵에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용기 내기 쉬운 아이템인 아이스크림은 작은 다회용 컵부터 텀블러까지 다양한 용기를 활용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 카페에서 주문하며 용기를 내밀었더니 사장님이 그 컵이 너무 좋다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아이스크림이나 빙수를 텀블러에 담으면 바깥 더운 날씨에도 온도를 오랫동안 차게 유지할 수 있어 일회용기보다 훨씬 이득이다.



떡도 밀폐용기에 담기



떡은 이미 포장된 경우가 많지만 꼭 한 두 개씩은 그 자리에서 포장해 준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효과도 있지만 대부분의 떡은 그날 그날 만들어 파는 거라 운이 좋으면 갓 나온 떡을 쓰레기 없이 사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햄버거든 감자튀김이든 뭐든



햄버거는 솔직히 고난위도다. 종이 포장 없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에 나도 딱 한 번만 해봤다.

(롯데리아 미라클 버거와 남편의 햄버거)


그런데 감자튀김은 엄청 쉽다. 빨갛고 두껍고 비닐 코팅된 포장 용기가 아까워 시도해 봤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그 자리에서 담아주는 거고 하나씩 집어먹는 거라 텀블러든, 밀폐용기든 용기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감자튀김 용기내는 대부분 휴게소에서 해봤다.



땅콩보다 쉬운 건 없다.



어릴 때 엄마가 남대문에서 사다 줬던 땅콩 맛을 잊지 못한다. 엄마의 이모할머니쯤 되는 먼 친척분께서 땅콩 장사를 해서 우리 집엔 늘 맛있는 국산 땅콩이 끊기지 않았다.


지나가다 땅콩을 보면 꼭 사고 귀한 우도 땅콩은 절대 지나치지 않는데 땅콩만큼 용기 내기 좋은 아이템도 없다. 부스러기도 잘 안 생기고 어디에 담아도 좋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어.



옥수수, 휴게소 찐 감자, 동네 가게의 솜사탕, 비건 페어의 그래놀라 등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모양이 지나치게 흐트러지지 않고 내게 용기가 준비되었다면 그걸로 오케이.


비닐 한 장이라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다면 매일 아침 독서, 조깅, 수영, 다이어트만큼이나 일상의 큰 기쁨이자 성취감이다.



이것까지 해봤다.



내가 용기 내본 것 중에 가장 희귀템은 꽃과 흙이다. 아이의 생일날 집에서 챙겨간 신문지에 꽃을 담아왔다. 화훼 단지에서 흙을 구매하려는데 포장이 안 되어 있길래 따로 담아왔다. 차에는 늘 재사용할 수 있는 지퍼백과 밀폐용기가 구비되어 있다. 언제 어떻게 용기 내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챙겨두면 편하다.


흙까지 용기낸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지 않을까.





케이크 용기내 챌린지




그동안 케이크 용기내 챌린지의 전용 용기는 김치통이었다. 케이크판이 들어갈 만큼 크기가 큰 용기는 김치통뿐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깨끗이 씻고 말린 통이라 김치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1호 사이즈까지만 용기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제 이 정든 김치통과 이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남편과 나, 아이 이렇게 셋이서 보내는 기념일엔 미니 케이크를 밀폐용기에 담았다. 다 먹지도 못할만큼 큰 홀케이크보다는 이게 더 실용적이고 좋았다.





케이크 상자를 두 세 번 정도 재사용하기도 했는데 종이라 케이크를 꺼내다 벽에 묻으면 다시 쓰기가 어려웠다.




대나무로 만든 피크닉 바구니에도 담아봤다. 직사각이라 정사각 케이크판이 자꾸만 기울어졌다.




쓰레기 없이 케이크를 샀다!



 모든 실천과 행보를 함께 해온 남편이다. 환경 생각하고 실천한다고 sns에 잘난척하는 건 난데 뒤에서 미리 용기 챙기고 준비하는 건 남편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 외출 준비를 할 때 아이 텀블러와 실리콘 빨대까지 야무지게 챙기는 남편이다.


그런 남편이 사준 케이크 보관함으로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용기내 챌린지에 도전했다. 카톡으로 미리 주문할 때 용기에 담아 갈 수 있는지 문의했고 케이크판까지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미 여러 번 용기를 냈던 상점 근처의 떡공방이라 조율이 수월했다. 출근하는 길에 들러 보관함을 맡기고 다음날 케이크를 찾으러 갔다.





아빠 생신에 맞춰 주문한 아름다운 떡 케이크. 용기낸 거라 더 뿌듯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남편이 케이크는 특별한 날 먹는 거고 축하하는 자리에 있어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무거운 사기그릇으로 케이크 판을 준비했다. 그 덕분에 케이크 보관함의 무게는 한층 더 무거워졌지만 괘..괜찮아. (남편이 내게 복수하는 건 아니겠지..)





더 이상 챌린지가 아닌 용기내 챌린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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