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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ug 08. 2024

키즈카페에 텀블러를 가져가야 하는 이유



작년 11월 23일 이후 식당이나 카페 내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계도 기간의 기약 없는 무기한 연장이니 사라졌다 표현해도 무리는 없겠지.)

다회용품 사용으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여러 어려움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했다. 종이 빨대는 사용감이 좋지 않았고 친환경이냐 아니냐 말들이 많았다. 코로나로 인해 다회용기의 위생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으며 다회용기 세척 인력이나 시설 보충에 대한 비용 지불을 문제 삼았다.

그렇게 공장에서 갓 나와 세척도 안 하고 사용되는 값싸고 미세 플라스틱 가득한 일회용품이 제공하는 편의의 세상은 계속되었다.

일회용품이 싫은 소수의 사람들은 집에서부터 무겁게 텀블러를 비롯한 다회용기를 보부상처럼 이고지고 다녀야 한다. 선한 의도와 불편을 감수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절해야 하고 용기 내야 하는데 여기에 유난스러운 시선까지 감내해야 한다.

그래도 계도 기간이라 일부 카페들은 매장 내 취식과 포장 여부를 구별하여 일회용품을 제공해 왔다. 이미지가 생명인 브랜드들 역시 친환경 캠페인을 지속하며 매장 내 다회용품 사용을 나름 열심히 지켜오고 있다. (그게 완벽하건 아니건 간에)




규제와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운 사각지대



이번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도 식당도 아니다. 커피를 비롯한 음료를 판매하지만 그것들의 역할이 부수적이라 환경적 비판의 시선을 덜 받는 곳. 하지만 꽤나 많은 유동 인구와 구매자들로 장사는 흥하는 곳. 말하자면 환경적 규제와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운 곳.

아이 엄마로서 경험상 이런 사각지대는 두 곳으로 압축되는데 바로 박물관과 키즈카페다.

모든 박물관엔 카페가 있고 공공기관의 특성을 띄지만 다회용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박물관 카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일반 카페보다도 못한 곳이 더 많다. 박물관의 테마 자체가 친환경적인 곳조차도 여지없이 일회용품을 남용한다. (예를 들면 식물원 같은 곳)

왜 그럴까.

추측해 보자면, 박물관 내의 카페들은 장소만 공공기관일 뿐 관내에서 별도의 관리를 하지 않는 외부 업체 입점 혹은 위탁 운영으로 보인다. (물론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닌경우가 더 많다.) 감성적인 카페 공간도 아니고 로스터리 카페와 같은 전문성도 없다. 부모들이 아이 데리고 와서 쉽게 사고 먹기 좋은 접근성 좋은 곳 이상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환경에 대한 실천은 각자의 몫이고 대부분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인다.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인지 푸드코트처럼 좌석이 넓게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운터만 보면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처럼 운영되며 음료를 일회용기에 담아 제공하는 곳. 그게 바로 박물관 카페다.

(박물관이라도 통칭했지만 시립 미술관, 식물원, 어린이 박물관 등을 모두 포함한다.)


텀블러가 필수품인 키즈카페


키즈카페도 비슷하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면 놀기 좋은 곳이지 아이들의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제공한다거나 환경을 생각해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곳은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키즈카페의 목적은 온전히 아이들의 오락과 유희에 맞춰져 있고 그 안의 식당 혹은 카페 역시 부모들이 아이들과 빠르고 편하게 먹기 좋은 메뉴들을 제공한다. 인스턴트, 분식, 뽀로로 음료수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메뉴의 가격이 그리 저렴하지 않은데도 부모들은 그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관광지에서 사는 기념품이나 음료가 제값보다 더 받는 것처럼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도 아이들을 위해 방문한 장소이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키즈카페 역시 테이블과 의자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실내공간이지만 일회용기를 제공한다. 자리에 앉아있는 어른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마신다. 입장할 때 빈 종이컵을 주고 셀프로 커피나 차를 타먹도록 안내하는 곳도 있다. 아이들 역시 얇은 종이컵을 뽑아 물을 두세 모금 마시고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서비스는 최소화하고 편의는 극대화하는 현대사회 시스템의 축소판을 키즈카페에서 마주하게 되는 제로웨이스트 실천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나란 존재가 할 수 있는 건 양손 무겁게 텀블러를 챙기는 일뿐이다.

키즈카페는 키즈들을 위한 공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카페 안에 부모들을 만족시킬만한 메뉴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어필하면 그것으로써 목적을 달성한다. 모두가 음료를 마시는 동안 공간을 떠날 일이 없어 테이크아웃이 필요 없음에도 일회용기가 제공된다. 그리고 아무도 이것에 대해 지적하거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물론 키즈카페에서 머그컵이나 유리컵을 사용할 경우 아이들이 돌아다니다 깨트릴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많은 카페들이 아이스 음료를 제공할 때 사용하는 가볍고 안전한 다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



하지만 귀찮다고 말하는 순간



사업주 입장에선 시간과 비용이 추가 되는 일이니 매우 귀찮고 성가신 고려 사항일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말하는 순간 환경적 가치는 모두 힘을 잃어버린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소상공인들을 배려해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종료한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말 그것 때문에 장사가 되고 안되는 것일까. 배달 앱 수수료 때문 아니고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불경기의 원인인 게 확실하냐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일부러 불편하고 싶어서, 효율을 몰라서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솔직히 나도 귀찮다. 매번 텀블러 씻는 거, 쓰게 될지 아니게 될지도 모르는 곳에 방문하기 위해 챙겨서 양손 무겁게 들고나가야 하는 거,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따로 말해야 하는 거, 빨대 꽂아주지 말라고 했는데도 꽂혀있는 빨대를 마주해야 하는 거 등등 하나같이 귀찮은 거 투성이다.

그래도 이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잠깐의 쓰임을 위해 5백 년을 썩지 않을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게, 그렇게 더럽혀진 세상에서 내 아이가 살아가는 게, 미세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먹는 게 싫다.

불편하고 번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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