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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기] 오모테산도 비건 레스토랑 브라운라이스

by 흔적


토요일 오모테산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좁은 거리는 화려한 차림으로 쇼핑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수많은 명품 매장 중 내가 눈길을 준 곳은 없었다. 종종걸음으로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내가 가려는 비건 레스토랑에 웨이팅 줄이 길까 봐 오직 그것만이 걱정이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를 남편이 달래는 사이 나는 경보하듯 뛰어가 브라운라이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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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거리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 조금 더 가면 브라운 라이스가 나온다. 건물 사이 좁은 골목 안에 요새처럼 숨어 있어 잘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었다. 두시가 다 되어 도착했는데 늦은 점심시간이었고 주말이라 역시 웨이팅이 있었다. 부리나케 패드에 예약을 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미리 이 레스토랑에 대해 찾아봤었는데 한 블로그에 웨이팅이 있는 편이라고 쓰여있어 이미 예상한 상황이었다. 그 후기에서 기다리는 동안 할 일 또한 알려주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있는 뷰티 매장을 둘러보는 일이었다.



유기농 비건 뷰티, 닐스야드 레머디스(Neal's Yard Reme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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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영국의 유기농 비건 뷰티 브랜드인 '닐스야드 레머디스(Neal's Yard Remedies)'의 매장이고 브라운 라이스(Brown Rice) 역시 닐스야드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오직 비건 식당만을 방문하기 위해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여행 일정을 짜는 건 좀 미안한 감이 있는데 마침 요요기 공원 근처이고 뷰티숍도 볼 수 있으니 겸사겸사 괜찮을 것 같아서 점심 식사 장소로 이곳을 정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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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닐스야드 레머디스 매장. 화학적인 인공 소재를 전혀 쓰지 않고 유기농 천연 성분만 사용하는 뷰티 브랜드라고 한다. 유기농 허브를 직접 재배하여 제품을 제조하고 있으며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마이크로비즈를 이용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마이크로비즈는 세안제, 치약, 화장품 등에 첨가되는 미세한 플라스틱 알갱이로 하수구로 흘러들어 가 바다로 유입될 경우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닐스야드 레머디스는 미세 플라스틱뿐 아니라 인공 색소, 인공향, 파라벤, 실리콘 등 피부 건강과 환경에 안 좋은 화학물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브랜드다.

친환경 브랜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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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나 사볼까 싶어 열심히 구경하다 유리 용기에 담긴 수분 크림을 사기로 했다. 쫀쫀한 제형의 탄력을 주는 크림이 필요해 탄력 수분 크림을 두 개 골랐다. 하나는 내 것, 또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고양이 봐준다고 우리 집에 두 번이나 와주신 친정엄마의 것.


화장품 고르다 보니 시간은 정말 금방 흘러가네.

우리 차례가 되었다.




유기농 비건 레스토랑, 브라운 라이스(Brown 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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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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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함께 앉는 커다란 정사각 테이블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브라운 라이스(Brown Rice)는 유기농 식재료와 계절 채소를 중심으로 건강한 일본식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메뉴는 많지 않았다. 런치세트 3가지 중 하나는 품절. 나머지 두 개 중에 골라야 했다. 런치세트 서로 다른 거 각각 하나씩 시키고 아이는 단품 하나에 밥을 추가했다. 어차피 우리 가족은 이렇게 시켜도 모두 다 함께 나눠먹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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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 애피타이저가 먼저 나왔다. 약간 물김치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유자가 들어가서 상큼한 물김치. 식초에 절인 것 같은 느낌이라 식사에 함께 나와도 괜찮았을 것 같다. 하지만 배고파서 먼저 다 먹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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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메뉴가 나왔다. 계절 야채 카레 세트다. 이렇게 트레이에 여러 가지 음식을 한상 차림으로 먹는 거 왜 이렇게 좋을까. 건강한 채소들로 인해 다양한 색의 조합을 보는 일도 식욕을 돋운다. 맵지 않은 부드러운 카레에 구운 당근, 연근, 우엉, 빨간 무가 가지런히 올라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구황작물 모음집이네. 구황작물 특유의 흙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내 입맛에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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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으로 나온 톳&유부와 피클도 너무 맛있었고 상큼한 샐러드도 좋았다. 분명 자극적인 맛은 아니다. 그래서 더 좋았다. 건강한 자연 식물식이 주는 풍미가 좋아한다. 조미료 맛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좀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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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선택한 런치세트는 현미밥과 두부 가라아게, 유기농 된장국, 채소 절임의 조합이었다. 두부 가라아게는 구운 두부 위에 된장 같은 소스가 올려져 있고 채소가 곁들여졌다. 다시마&유부 반찬은 내 거랑 똑같았고 비건 마요 샐러드가 하나 더 있었다. 각자의 취향대로 잘 선택한 듯.


아이를 위해 현미밥과 단품 메뉴 하나를 추가했는데 남편의 런치세트 메인 메뉴와 같은 것이었다. 두부 가라아게와 채소구이. 두부야 뭐 워낙 좋아하니까 잘 먹었는데 채소 구이는 너무 크게 통으로 올라와 있어서 그랬는지 안 먹겠다고 했다. 원래 집에서 당근, 무 채 썰어서 볶아주는 편이다 보니 크게 썬 건 씹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채소는 내가 다 먹고 두부와 소스에 밥을 비벼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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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양이 좀 부족할 까 싶어서 디저트로 딸기 타르트를 추가로 주문했다. 보통 이런 디저트는 미리 만들어두었던 걸 꺼내기 마련인데 이곳은 주문 후에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시트는 미리 준비되어 있었고 그 위에 크림과 딸기를 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예쁜 딸기 타르트가 나왔다. 그리고 옆에 피스타치오 아몬드가 뿌려져 있었다. 크림을 아몬드에 묻혀서 먹으면 너무나 달콤 고소. 타르트의 주인께서 정말 조~금 맛만 보게 해 준 덕분에 자세한 맛 리뷰는 어렵지만 아이가 맛있게 잘 먹었다. 아이가 좋아할 만큼 달콤하지만 지나치게 달지 않아서 좋았다.

기분 좋은 배부름을 가지고 식당에서 나왔다.

사실 이날의 일정엔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도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마르쉐 시장처럼 농부들이 유기농 & 무농약 채소를 직접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곳이고 잼 같은 가공식품도 만들어 팔고 있어 가볍게 요기할 수도 있는 그런 곳이다. 브라운 라이스에서 도보 8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아침 일찍 가서 이것저것 사 먹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이 일정은 무리였다. 오후에 미술관과 전망대도 가야 하는데 여섯 살 아이가 다 소화하기에는 일정이 너무 많았다. 더구나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3시가 되었는데 아오야마 파머스 마켓은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브라운라이스에서 건강한 자연 식물식을 먹어보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아오야마 파머스마켓 일정은 과감히 포기했다. 혼자 하는 여행도 아니고 아이가 도보로 걷는 거리가 꽤 되었던 관계로 다시 생각해도 잘했다 싶다.

늦은 점심이었던 만큼 너무 만족스러웠던 브라운 라이스에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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