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날이었다. 키가 큰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울창함은 복잡한 도심 속에서 숲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라주쿠 역에 내려 메이지신궁에서 요요기공원까지 넓고 긴 길들을 거닐다 보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숲 같았던 메이지신궁
메이지 신궁은 메이지 천황과 그의 아내 쇼켄 황태후의 영혼을 봉헌한 곳이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신사나 신궁처럼 왕을 신격화하는 토속 종교가 있다. 이것 또한 불교문화의 일부인가 싶어 찾아보니 엄연히 다른 종료라고 하네. 나는 기독교일뿐더러 당연히 일본의 신사에 참배할 마음은 없기에 그저 산책로와 일본의 전통문화를 구경하기 위해 메이지 신궁을 방문했다.
신궁 안까지 들어가는 길은 키 큰 나무들로 인해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늘 산책로가 쭉 이어져 있었다. 정말로 외부와는 단절된 도심 속 숲에 들어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1920년에 세워진 메이지 신궁은 약 10만 그루의 나무를 일본 전역에서 기증받아 심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생태학자들이 철저하게 계획해 자생적으로 숲이 자라도록 설계하여 100년 후를 내다본 인공림이라고 한다. 그러부터 105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울창한 숲이 되었으니 계획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길고 긴 숲 같았던 산책길의 끝엔 본전이 있었다. 다른 것보다도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두 그루의 거대한 나무였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나무가 키도 크고 웅장할 수가 있지?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경이로워 보였다. 이 나무 또한 천황 부부를 기리기 위해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하네. 카메라에 다 담기도 힘들 정도였다. 난 그저 나무가 울창한 게 부러웠다.
산책에 지쳐 잠시 당충전을 하고 가기로 했다. 아이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나는 말차를 선택했다. 화창한 날씨에 씁쓸한 말차는 맛이 아주 좋았다. 비싼만큼.
요요기공원
메이지신궁 바로 옆이라 걸어서 5분 걸려 도착한 요요기공원.
(5분이나 걸린 이유는 사람이 많아서)
도심 속 울창한 숲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이고 시민들에게 쉼터이자 나들이 장소가 되어주는 곳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올림픽 공원 같은 느낌이랄까.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작게 꾸며진 정원이 있었다. Tokyo Park GardenAward 라는 팻말이 보였는데 어떤 행사를 위해 기획된 것인지를 모르겠다. 암튼, 그곳엔 예쁜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심어져 있어 구경하며 사진 찍기에 좋았다. 진한 꽃 향기에 킁킁대기도 하며.
꽃은 왜 이렇게 예쁜 걸까. 특히 외국에 나오면 길가에 핀 작은 꽃 하나에도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아마도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에게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꽃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꽃들 사이로 그림처럼 화려하고 예쁜 나비가 날아들어왔다. 꽃이 있는 곳엔 당연히 나비가 있지만 이렇게 예쁜 나비는 처음 보는 것 같네. 지금 이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산책하는 게 좋았다. 나무 그늘 아래 흙을 밟는 것도 좋았고 단정하고 깔끔하지만 자연스러운 풍경도 좋았다. 조류 보호 구역 안에 무리 지어 앉아있는 까마귀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나라는 까마귀를 흉조라고 여기지만 일본에서는 길조다. 길조든 흉조든 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겠지. 자연 안에서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을까.
공원의 여러 공간 중 또 하나 흥미로웠던 곳이 있었는데 커다랗게 울타리가 쳐진 공간 안에 개들이 목줄을 풀고 놀고 있었다. 소중형견, 중대형견으로 나누어진 공간 안에서 견주들과 개들은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걸 처음 봐서 놀라웠고 너무 좋다고 느껴졌다.
거리에선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강아지 목줄이 필수지만 동물에게 목줄은 불편하고 갑갑한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서 목줄을 하지 않은 개들을 그대로 두는 사람들을 마주친다면 불편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 동물들은 사람이 아니니 완전한 교육이란 있을 수 없고 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이 공간 안에서 개들은 완전히 자유롭고 다른 개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으니 공원에 이런 공간이 있는 건 적극 찬성이다.
개들을 구경하느라 서있는데 어느새 그 앞에서 나뭇가지와 돌을 가져와 소꿉놀이하는 아이. 너무 열심히 집을 만들고 있어서 바로 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즐거워하는 아이. 이대로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좋을 것 같고 스포츠나 어느 한 방면에 재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건 부모라면 당연한 바람이겠지만 그것보다 내가 더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
스스로 돌과 나뭇가지를 주워와 자기만의 집을 만들어 놀이하는 지금처럼 자신의 삶에 열심이었으면 좋겠다. 크든 작은 자기만의 세계를 열심히 꾸려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일하게 될지 몰라도 그건 온전히 아이가 선택할 몫이다. 하지만 내 삶을 내가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꼭 가르치고 싶다.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 가장 최고는 부모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이다. 본보기가 되는 것.
열심히 살아야겠다.
거대한 캠핑 장비 없이 돗자리 하나 가져와 공원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늘 자리를 쟁취할 생각도 없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들. 긴 시간 동안 나무를 잘 보존해온 덕이겠지.
“일본은 왜 다 나무가 키가 큰 걸까? 우리는 작은데..”
“여기는 전쟁이 안 났잖아.”
남편의 대답이었다. 우리나라는 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사라졌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침략 당한 적이 없고 전쟁의 피해도 크지 않았으니 나무가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잘 자라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따뜻하고 습한 날씨가 많아 나무가 빠르고 크게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화산이 많은 나라라 토양도 비옥한 편이다. 오래된 정원 문화와 신사 및 사찰 중심의 자연 숭배 문화가 강해서 큰 나무를 일부러 잘 보존해온 것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쟁 후 빠른 경제 성장과 개발로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여전히 모든 정책이 개발 위주다. 그로 인해 자연이 잘 보존되기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도심 속에서 키 큰 나무를 보기도 어렵다. 키 큰 나무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냥 존재 자체로 탄소 흡수원이자 천연 그늘이고 쉼터인데 제발.
즐거웠던 요요기 산책 끝.
결론 : 나무는 소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