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된 롱패딩이 숏패딩으로 변신한 이유

by 흔적



정확히 2018년에 w concept에서 주문한 ‘마르디 메크르디‘의 롱패딩이었다. 연도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걸 사고 얼마 안 되어 친구가 아이를 낳았는데 산부인과에 입고 갔었기 때문이다. 그때 태어난 아이가 지금 아홉 살이 되었다.

종아리 중간쯤 내려오는 길이와 심플한 디자인, 벨트까지 모두 마음에 들어 교복처럼 입었다. 여덟 번의 겨울을 맞는 동안 날씨가 영하로 떨어질 때마다 내 몸을 이불처럼 감싸주었던 롱패딩이다.




이거 입고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다. 출근할 때도, 아이 데리러 갈 때도, 장 보러 갈 때도 언제나 이 패딩과 함께했다. 소매 쪽에 솜이 조금 줄어든 느낌은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겨울에도 이거 하나 면 충분하다.

아니, 충분했다. 과거형으로 쓰는 게 맞겠다.

이제 과거가 되었으니.




눈썰매장에 놀러 가서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1월의 어느 날. 휴게실에 잠시 몸을 녹이러 들어갔다가 롱패딩도 함께 녹아버렸다. 내 키만큼 큰 난로가 참 성능이 좋아 보였는데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나는 왜 패딩을 입고 습관적으로 뒤를 돌았을까. 불에 녹아 쭈글쭈글해진 패딩을 보고 스스로 얼마나 황당하던지. 오래도록 아껴입은 패딩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주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하하하 엄마 패딩 과자 됐다~”

속 모르는 일곱 살 아이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바스락거리는 롱패딩을 만지며 장난을 쳤다. 아이에게 웃어 보이면서도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지만 이미 지난 버린 일을 후회해 봤자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녹아서 굳어버린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만 남았다. 수선을 할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고민했다. 속상했지만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속이야 편하겠지만, 버리면 쓰레기가 될 것이 분명하고 지구 어딘가에서 오랫동안 썩지 않거나 태워질 것이 분명하다. 곤도 마리엔느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제로웨이스트는 ‘지구의 미니멀‘이지 내 눈에만 안 보이면 괜찮은 ‘시각적 미니멀’은 아니다.


친정 엄마의 오랜 단골 수선집을 찾아갔다. 나도 예전에 수선을 몇 번 맡긴 적이 있는 곳이다. 사장님 솜씨가 좋고 깔끔해서 엄마가 늘 칭찬을 하시는 곳이다. 난이도가 있는 수선이기에 고수의 기술이 필요했다. 사장님과 수선 방법을 의논했다. 천을 덧대어 수정하는 법과 자르는 방법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천을 덧대는 방식은 롱패딩이라는 길이를 살릴 수는 있지만 티가 많이 날 것이 분명했다. 오래된 옷이라 똑같은 원단이 없기도 하고 티가 많이 날 것이 분명했다. 면적도 넓은데 원단이 하나로 되어 있어서 다른 천을 덧대면 중간에 이음선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냥 잘라 주세요.”





잘랐다. 숏자켓이 되었다. 옆에 손 넣는 주머니가 너무 아래로 간 것 같은 느낌이 있긴 하지만, 손만 안 넣으면 크게 티나 진 않는다. 짧아서 오히려 활동성이 생긴 느낌이고 새 옷을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롱패딩은 새로 사야 할 것 같은데, 당근마켓에서 괜찮은 걸 찾아볼 생각이다.


8년을 함께한 롱패딩아, 앞으로는 숏패딩으로 나와 조금 더 같이 있자. 쓰레기가 되지 말고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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