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날까지도 아이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거래에 성공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장난감 선물을 받는 게 당연하지 않기를 바랐다. 요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결핍된 건 물건이나 선물이 아니라 바로 ‘결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도 크리스마스라고 선물을 받아가지고 오는데 부모가 또 한 번의 산타 할아버지 역할을 해야 할까. 그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선물은 전혀 안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아이를 둘러싼 모든 분위기가 산타 할아버지와 선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이도 기대하고 있고. 무엇보다 아이의 기대를 증폭시킨 장본인은 남편이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해 줬으면 좋겠어?”
“펜타스톰 엑스!”
너무 자주 물어보는 게 탐탁지 않았다. 이미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간 상황이라 나도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플라스틱 장난감은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구매해 준비했다.
남편이 퇴근길에 동네 아파트에서 문고리 거래로 가져온 산타 할아버지 선물은 아이가 원했던 바로 그 헬로카봇 펜타스톰 X였다. 크리스마스의 이른 아침, 자는 아이 발밑에 살며시 놔주었다.
조금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이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보통은 아이가 깨자마자 옆에 아무도 없으면 안방으로 엄마, 아빠 찾아 건너오는 편인데 어쩐지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딸깍딸깍 소리가 나는 걸 보니 깬 것 같은데 나오지는 않는 것이 이상해 방문을 열어보았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고 갔어.”
배시시 웃으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얼마나 좋으면 아침 인사도 건너뛰고 저렇게 가지고 놀고 있는 걸까. 남자아이들에게 변신 로봇이란 어떤 의미인 걸까. 6년 차 아들맘은 아직도 다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은 그 모든 걸 이해하고 공감하는 듯했다. T의 인간화라고 해도 될 것 같은 남편은 아이에게 있어서만큼은 공감 100%의 F 아빠다. 성별이 같아서 그런 건지, 자기 자식이라 그런 거지 그 지독한(?) 사랑을 볼 때마다 신기할 따름이다.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고 가셨나보네.”
“웅, 라이프 캐논이 없어서 좀 허전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라이프 캐논이 뭔지 모르지만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이유.
선물을 준비할 때 남편이 정확히 했던 이야기와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라이프 캐논 버전을 갖고 싶어 했는데 내가 찾은 건 그 버전이 아니었다. 하지만 물건이 한정적인 당근마켓 안에서 입맛에 맞춰 구하긴 너무 어려웠고 이 정도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라이프 캐논이 아닌 펜타스톰 X를 샀던 것이다.
혹시 둘이 영혼을 공유하는 걸까.
헬로카봇 펜타스톰X 5단 합체 변신로봇은 얼마 쓰지 않아 상태가 좋았고 4만 5천 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처음에 거래자에게 물었을 땐 큐브가 어디 갔는지 몰라 찾아봐야 한다고 했었는데, 결국 모든 부품까지 다 찾아주어 완전한 상태로 구매했다. 이걸 새것으로 샀다면 돈은 두 배 아니 세 배쯤은 줬어야 했을 거다.
선물이 너무 좋았던 아이는 할머니네 가는 길에도 장난감이 든 이케아 파우치를 소중히 안고 갔고 차에서도 내내 로봇 변신에 몰두했다.
그런데 소름 돋았던 사실 하나. 아이가 아빠랑 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밖에서 듣게 되었는데, 아이에게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솔직히 말해봐. 이거 아빠가 사 왔지!”
남편의 심장이 떨어질 뻔 하였다고 한다. 아직 여섯 살인데 벌써 산타 할아버지의 환상은 깨지는 것인가. 나 어렸을 땐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믿었던 것, 아니 믿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벌써 이걸 안다는 게 놀라웠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주는 거잖아. 산타 할아버지 안 믿어?”
“에이~그런 건 어린애들이나 믿는 거지.”
너 어린애 아니었니.
말은 그렇게 해놓고도 반신반의하는 듯했다. 자꾸만 아빠가 사 왔다는 증거를 찾아내려 애썼다. 거래할 때 상자 대신 로봇이 담겨 있던 이케아 파우치 라벨을 보고 아이는 소리쳤다.
“이거 아빠가 사 온 것 같아. 여기 이 글씨 우리가 갔던 데잖아!”
“.. 이케아엔 로봇을 팔지 않는단다.^^”
“근데 이 로봇은 왜 설명서가 없어?”
“산타 할아버지는 설명서가 없어.”
“^^”
“너 왜 웃어?”
“아니야 비밀이야.“
“이거 산타 할아버지가 준거 맞거든!”
“그래 할! 아버지~”
우리 아기 다 컸구나.
그러면서도 하루 종일 들고 다녔고 할아버지가 누가 줬냐고 물으니 산타 할아버지가 줬다고 대답하는 여섯 살. 이제 곧 일곱 살.
내년에는 크리스마스가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생각이다. 모두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예수님 생일이라고 말해주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물건이 넘쳐나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고 매 기념일마다 선물을 챙겨주지 않아도 유치원, 학원, 가족(조부모님, 친척 등)들을 통해 많은 선물을 받고 있다.
부모까지 여기에 더해 더 큰 풍요를 주는 게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일까?
결핍이 결핍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너무 풍족해서 아이에게 약간의 결핍을 주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이유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안전하기 바라는 마음이 시작이었다.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중고 장난감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풍요로운 크리스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