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앞의 미니멀 말고 지구의 미니멀

by 흔적


나도 집안의 물건을 모두 비우고 심플하게 살고 싶었다. 잡동사니로 가득 찬 집보다는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 관리하기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까. 특히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자 혹은 프리랜서의 경우엔 머무는 공간이 잘 정돈되어 있어야 일할 맛도 나고 업무 효율이 올라간다. 나 역시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서 거실에 있는 테이블로 출근하는데, 출근 전 루틴은 다름 아닌 청소다. 아이가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정리하고 간단히 청소기를 밀고 나면, 산뜻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다.


잘 정돈된 집이라고 해서 물건이 없는 건 아니다. 아이도 키우고 고양이도 있는 3인 1묘 가정이다 보니 다양한 물건이 필요하다. 우리 집 거실에 있는 물건들만 나열해 봐도 결코 적지 않다. 우선 소파, 식탁, 피아노, 캣타워, 에어컨, 수납장, 아이 책상까지 물건들로 가득하다. 싹 다 버리고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집들처럼 하얗게 텅 빈 거실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우리 집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는 방식이기에 굳이 따라하지 않았다.


우선 에너지 높은 일곱 살 아들에게 그저 미니멀하기만 한 집은 너무 심심하다. 장난감으로 가득한 집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있어야 아이도 놀고 배울 것이 있다. 아이는 소파에서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식탁에서는 식사를 하고 일기도 쓴다. 그러다 심심하면 아파트 이웃에게 나눔 받은 피아노를 친다. 적당히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우리 집이 좋다. 치우는 속도보다 어지르는 속도가 빠른 호기심 천국 어린이와 함께 살며 지나치게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건 내 체력만 소진될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꽤 많은 물건들이 ‘원래’ 있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분명 그 처음이 있었을 텐데 그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에 산 물건들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서 받은 것들이다. 그땐 좋다고 샀는데 시간이 흐르며 취향이 달라져 보기 싫어진 물건들도 있다. 그 물건들을 모두 어떻게 해야 할까. 싹 다 버리고 집을 깨끗하게 비우는 게 정답일까. 비운다고 후련해질까.


내가 추구하는 ‘제로웨이스트’라는 가치관에 맞는 선택인지 고민해 본 결과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못생긴 물건들을 내 눈앞에서 없애버리는 게 내가 원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아니다. 버리는 건 쉽지만 그다음에 또 무언가 필요해지면 새 물건을 사게 될 테고, 그럴 때 ‘미니멀한 디자인’의 제품을 사는 것으로 대체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미니멀하면 그게 미니멀 라이프일까. 그냥 미니멀 인테리어 일뿐이다.


미니멀리즘은 원래 20세기 초 근대 건축에서 시작된 흐름으로, 화려한 장식을 덜어내고 구조의 본질에 집중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했다. 이후 1960년대 미술의 미니멀리즘과 만나면서, 단순한 형태를 넘어서 공간과 빛, 여백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의 문제로 확장됐다. 그래서 미니멀은 흔히 말하는 ‘적게 두는 삶’이나 ‘깔끔한 디자인’만을 뜻하지 않는다. 진짜 미니멀은 보이는 것의 적음이 아니라, 비워진 자리에서 생겨나는 감각과 태도, 그리고 삶을 대하는 자세에 더 가깝다.


나는 이 미니멀리즘의 본질이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 안의 물건을 무조건 버리는 비움이 아니라, 있는 물건을 잘 활용하고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미니멀 라이프가 좋다. 미니멀 라이프는 색깔도 디자인도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쓰레기들이 지구 반대편에 조금이라도 덜 쌓이는 생활 방식이다.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덜 배출해 공기 중에 미세 먼지가 적어지게 만드는 현명한 선택이다.


물론, 집 안에 물건이 적으면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도 줄어들고 불필요한 소비를 덜 하게 된다. 꼭 필요한 물건만 두고 살면 낭비도 줄일 수 있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나 역시 정말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정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만, 버리는 것은

최소화하고 중고 거래로 판매하거나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해 물건들이 다시 쓸모를 되찾도록 자원순환에 힘쓴다.


집에 쌓인 택배 박스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20개쯤 될 때까지 모아서 나눔 한 적이 있다. 박스에 붙은 테이프와 송장을 떼어내고 반듯하게 펼쳐 정리한 뒤 사진을

찍어 당근마켓에 올렸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올렸는데, 정말로 택배 박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나눔

받은 사람은 회사 서류를 대량으로 보관하기 위해 상자가 여러 개 필요했다며 고마워하며 가져갔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도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구나.


어떤 식으로든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을 줄이고 싶다.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에게 다시 쓸모를 되찾아주고 싶다. 내가 바라는 건 지구의 미니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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