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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un 26. 2019

요란한 꿈의 세계




나는 꿈 부자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자주 많은 꿈을 꾸어왔다. 평소처럼 정신 사납고 복잡한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경험하며 한바탕 꿈을 꾸고 난 어느 날 아침, 꿈에 대한 기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이것저것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한창 클 나이었던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던 성장기에 나는 1년에 10센티씩 자라며 매일같이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누군가에게서 도망가거나, 지진이 나는 꿈을 꾸었다. 그런 꿈들은 주변 친구들도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해보는 성장통 같은 악몽이었지만, 나의 꿈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열일곱, 열여덟 때까지 같이 살았던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꿈에 자주 출연하셨다.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날 건물에서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내려오는 꿈을 꾸다 울면서 깼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가끔 꿈에서의 슬픔은 현실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고, 알 수 없는 존재에 제압당해 가위에 눌린 적도 많았다.










언젠가부터 나의 다사다난한 꿈은 수면습관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한 번 잠에 드려면 꽤 긴 시간을 뒤척이곤 했다. 눈을 감으면 바로 잠드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고등학교 때부터였나. cd 플레이어나 mp3를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들기 시작했고, 그 습관은 라디오나 팟캐스트, tv를 틀어놓고 자는 습관으로 까지 이어졌다.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던 이십 대 중반의 어느 날. 나는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내가 나이를 차근차근 먹어가고 있음을, 인생이 생각보다 짧음을 한 순간에 확 느껴버리고 말았다. 그런 걸 느끼기엔 너무 어린 나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느낌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강렬한 것이었다. 너무 바쁜 일상을 놓아버린 후 찾아오는 현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나는 그때부터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보거나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잘 때면 그 두려움이 배가 되며 잠이 오지 않았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가슴이 덜컹하는 느낌을 자주 받곤 했다. 그래서 더 수다스러운 라디오에, 깔깔대는 tv 프로그램에 나의 잠을 의지하기 시작했다. 


온갖 혼잡한 이야기들을 한껏 흡수한 채로 잠에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평소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나의 꿈 세계는 더 요란하고 복잡해져만 갔다. 임신을 한 후인 두 달 전부터는 그 전보다 훨씬 더 버라이어티 하게 악몽을 꾸기 시작했는데, 몸의 호르면 변화인지 감정 기복이 심해진 탓인지 알 길은 없으나 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고 혼란한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서울역에 서있는 나, 무서운 사람들에게 통제를 받으며 무릎을 꿇고 기어 들어가 역사를 통과하는 나, 누군가에게 맞는 나, 누군가를 있는 힘껏 때리는 나, 어린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려다 나까지 늦어버리고 아무 시설도 없는 으스스한 건물에 도착한 나 등등. 꿈에서의 나는 정말 끔찍한 혼종 그 자체다. 며칠 전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허름한 문칸방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밥을 먹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무슨 의미를 지닌 건 아닐까 한참을 생각해봤었다.




 







꿈은 현실의 반영일까,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일까.



나쁜 꿈만 꾼 건 아니다. 대통령 부부가 꿈에 나와 로또를 사본 적도 있고, 가족의 태몽을 대신 꿔 준 적도 있다. 꿈은 다양한 의미를 지녔지만,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게 내 결론이다. 영화 '수면의 과학'을 보면, 꿈의 세계가 얼마나 복잡한 무의식과 잔상의 복합체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저 아득하고 희미하게 생각했던 꿈의 장면들이 영화 속에서 하나의 연극처럼 시각적으로 재현되는 것이 매력적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꿈이라는 연극 안에서는 과거의 추억과 오늘 흘려들었던 노래, 온갖 사람들 과의 관계나 감정들이 무작위적으로 짬뽕되어 대환장 파티가 일어나곤 한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꿈의 주인공이 될 땐,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가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어떨 땐 이상하고, 어떨 땐 변태 같으면서, 어떨 땐 끔찍하기까지 한 시트콤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꿈의 세계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자극받을 수 없는 요즘은 그래서 더 요란한 꿈들이 나를 시달리게 하는 한편 알 수 없는 영감과 생각들을 불러일으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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