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프리랜서가 되었나

by 흔적



드라마 '검블유(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 나온 대사다.


배타미(임수정)는 그녀의 남자 친구 박모건(장기용)'에게 "이 빌어먹을 프리랜서야."라고 말했고, 모건은 타미에게 "불쌍한 직장인"이라고 말했다.



빌어먹을 프리랜서도 불쌍한 직장인도 듣는 순간 너무 공감한 나머지 내 글의 제목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프리랜서라서 듣게 되는 오해와 걱정들에 대해 자꾸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요즘이었다. 프리랜서나 직장인이나 누가 더 힘들고 고되게 살아가나 시합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무엇하나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비교적 최근에 더 늘어나고 있는 고용의 형태인 프리랜서에겐 그걸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해명이 필요하다.


어떻게 살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괜찮고 무엇 때문에 괜찮지 않은지에 대해..










올해로 프리랜서 5년 차가 되었다.



프리랜서가 된 계기를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자의 반 타의 반이면서 겸사겸사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직장은 내가 했던 사회생활을 통틀어 심적으로 가장 힘들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시간을 안겨 주었다. 매일 출근길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낮이나 밤이나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괴로워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나와 맞지 않는 회사였다. 맞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하는데, 단순히 나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가 하는 일은 개인의 경험과 주관, 감각이 많이 좌우되는 일이었고 그래서 회사마다 추구하는 방향도 많이 다르고 디렉터의 성향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분야였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고 그 회사만의 업무처리 방식을 익힌다고 해도 대표의 성향을 잘 맞추지 않으면 일의 진행이 거의 불가능했다.


차라리 내가 신입이었으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이전 회사들에서 5-6년 가까이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며 일을 해왔기에 내가 강점인 핵심역량이나 특성이 존재했는데, 그것이 이 회사에서는 가장 중요하지 않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대표의 성향이 매우 사적인 감정과 독단적인 결정을 휘두르는 곳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지만, 대리에서 팀장으로 옮겨갔던 내가 이전의 일하던 노하우를 모두 버리고 그곳의 성향을 맞춘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모든 것을 바꾸고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더 암흑 속에 빠져들 뿐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버티며 울고 괴로워했고 그러는 사이 나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혼한다는 마음은 설레었지만, 전쟁터 같은 회사를 다니며 무슨 정신으로 그 과정들을 지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버틸 만큼 버텼고 지치기도 했을 때쯤 회사에 결혼 소식을 알렸다. 그 소식을 접한 대표님은 며칠 뒤 내게 사직을 권고하셨다. 억울할 것도 없었다. 결혼 준비 때문에 그 고된 시간을 억지로 버티고 있었던 나는 올 때가 왔다고 생각했고, 대표님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가 서로 맞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까워질 수 없는 평행선이었다. 동료들은 결혼 소식 듣자마자 그런 이야기를 하는 대표님이 얄밉다고도 말했지만, 나도 이 회사에서는 일주일이나 휴가 받고 맘 편히 신혼여행을 못 갈 것 같아서 모든 상황에 수긍했다. 그러다 하필 그 타이밍에 내가 이전 회사에서 하던 일과 비슷한 프로젝트가 들어오게 되면서 한 달만 더 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렇게 어찌어찌 한 달을 더 일한 후 퇴사했다. 결혼을 한 달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렇게 나는 결혼과 동시에 프리랜서가 되었다.










퇴사 후 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는 이유가 뭐였더라.



마지막 회사에서의 시간은 내가 내 능력과 자질을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마음에 심한 타격을 가져다주었기에 나는 잠깐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신적 혼수상태에 빠졌다. 정말 크게 다쳤다. 회복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망가져버릴 것 같았고 그런 망가진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의 고민이나 미련 없이 당연히 프리랜서의 길을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프로젝트로 일을 간간히 몇 건 하게 되면서 조금씩 천천히 상처 난 마음이 아물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아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작업물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버렸으니까. 새로운 회사와 일을 주고받을 때도 호의적인 피드백을 받기 전까지 혹시나 내가 만든 결과물이나 혹은 일하는 과정 같은 걸 맘에 안 들어하면 어쩌나 하고 무척이나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여러 회사들과 여러 건의 일을 하게 되면서 때론 무리한 스케줄이나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두지는 않았다. 그런 일들로 내 자존감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가 되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프리랜서가 가진 모든 불안을 몸소 껴안으며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