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좀 잡지 마.

by 흔적



한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고 또 양면적이기도 하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안단 말인가. 누군가는 내게 말이 많다고 하고 누군가는 내게 어쩜 그렇게 조용하냐고 묻는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 다른 성향과 능력을 다양하게 지닌 존재이지만, 빙산의 일각만 보고 각자의 시선이나 편견에 따라 마음대로 이미지를 결정하고 평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직장에서는.


한 때 나는 회사에서 '실용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이전 직장에서 했던 일의 특성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무언가 골라내고 분석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뜻하는 듯했다. 그 말은 아주 특별한 칭찬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칭찬이 아닌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를 인정해주고 이끌어주는 상사에게서 들은 말이었기에 나는 그 말을 뿌듯하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나의 성향 중에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속으로는 좀 더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추상적이다'라는 말도 한 번쯤은 나를 수식하는 말이 되어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바람은 그다음 직장에서 이루어지고야 말았는데, 훗날 나의 정체성을 흔드는 뼈아픈 말이 되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뜬구름



나의 마지막 직장이었던 곳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뜬구름'이었다. 한마디로 추상적이라는 뜻이었고 그것이 결코 칭찬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뜬구름 잡는다'는 말 뒤에는 항상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는 말이 따라붙었다. 나의 결과물이 끝맺음을 하지 못하고 과정에서 그쳐버렸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번, 두 번 듣다 보니 그 말은 나를 상징하는 말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동안 현실적이라는 말만 들어오던 나는 내 정체성이 무엇인지 찾을 수 없는 수렁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뜬구름 잡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당장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제안과 분석을 하려고 애썼고 실용적인 콘셉이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주변 동료들에게도 내 작업물이 괜찮은지 어떤지 묻고 또 물은 후에 컨펌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다시 뜬구름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수정하고 또 수정해도 마찬가지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도돌이표 같은 과정들이 반복되어야 하는 건지. 도대체 나는 어떤 구름을 걷어내야 선명해질 수 있었던 걸까. 나는 나 스스로도 자조적인 어투로 '뜬구름'이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실과 뜬구름의 갭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마 추구하는 방향이 너무나도 달라서였겠지.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왜 처음부터 그 간극을 몰라봤을까. 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회사마다 각자의 비전과 방향이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같은 분야 안에서 이렇게까지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부부는 취미나 취향이 달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지만, 삶의 가치관이 다르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 거였다.


이전 직장에서는 최대한 넓고 다양하게 보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발견해내자는 것이 팀에서 추구하는 바였다. 나는 그것을 향해 달려왔었다. 그다음 직장에서는 그 모든 방향성이 고스란히 독이 되었다. 그동안 중요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들이 쓸모없는 쓰레기가 된 것 같았고 어떤 쓰레기를 어떻게 주워 담아 다시 정돈해야 할 지도 까마득했다. 내가 만들어낸 뜬구름은 암울하고 새카만 먹구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공중에서 분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뜬구름 좀 잡자.



나는 언젠가부터 '몽상가'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뜬구름과 비슷한 말이다. 누군가는 내게 '그렇게 뜬구름 잡더니 진짜 뜬구름이 되었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나를 찌르고 흔들었던 말이 이제는 나를 수식하게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때 그 말은 정말 나를 잘 간파해서 한 말이었으려나. 나는 나만의 희고 풍성한 구름으로 내 세계를 전부 채워버릴 작정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누군가에게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해서 나에게도 가치 없는 것들은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은 쓸데 있는 것만 찾아 몰두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들은 내가 프리랜서를 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힘이 되었고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시 나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잡다하고 광범위하게 바라볼수록 내 안에 기둥은 더 단단해지는 듯했다.


즉흥적이면서도 엉뚱하게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염탐하고 수집하다 보면, 묘하게도 그 사이에 눈을 반짝이게 하는 것들이 발견된다. 그게 얼마나 나를 더 잘 살게 해 줄지는 몰라도 그것들을 내 안에 가득 채워보고 싶다. 아직도 이루어 낸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모든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지만, 그래도 계속 손을 뻗어보고 싶다.


뜬구름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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