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임산부 뱃지를 달지 않을까?

by 흔적




임신 6개월이 되었다.



죽을 것 같았던 입덧 지옥이 지나고 두통과 미열, 홍조, 호흡곤란 같은 컨디션 난조도 어느 정도 잦아들어 안정기에 돌입했다. 지난주부터 입덧 약을 끊었고 배는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임신 전과 같은 상태는 아니지만, 나름의 바깥 활동도 일반인처럼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인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반인의 테두리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제 배가 좀 더 부르게 되면 몸이 무거워져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지겠지.


요즘은 매일 빼놓지 않고 요가도 하고 산책도 한다. 임신 초기에 너무 힘들었기에 컨디션 조절과 건강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순산하기 위해 더더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다닐 수 있을 때 더 많이 다니고 보고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더해져 외출도 종종 하는 편이다. 무리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체력을 조금만 과하게 써도 집에 오면 넉다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충분히 쉬지 않았다고 뱃속의 아이에게 혼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지하철과 버스 타기



뚜벅이 무면허인 나에게 주요 교통수단은 버스와 지하철이다. 게다가, 어디든 막히는 서울은 차를 가지고 나가는 게 오히려 고생길이다. 프리랜서인 것이 정말 다행인 점은 사람들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특히 임신을 하고 나고선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입덧도 심하고 여러 증상을 겪은 임산부에게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을 거다. 앉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에서 호흡곤란을 겪은 어느 임산부의 이야기는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언제나 복잡한 대중교통을 피해 갈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서울의 지하철은 주말에도 꽤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기에. 입덧 지옥에서 겨우 벗어났을 때쯤, 갑자기 미팅이 잡혀서 평일 아침에 지하철을 타야 할 일이 있었다. 두 달 동안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누워만 있던 나는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그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임신을 하고 지하철로 출퇴근했던 친구에게 임산부 뱃지를 달고 타면 보통 양보를 잘해주냐고, 출근 시간 지하철은 어떻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친구의 대답은 암담했다. 한산한 지하철도 양보도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걱정의 걱정을 거듭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당일 아침 미팅 시간이 1시간 미뤄진 탓에 나는 여유로운 지하철에서 누구에게도 임산부임을 드러내지 않고 앉아서 미팅에 갈 수 있었다.










쓰지 않은 임산부 뱃지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일주일에 한 번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 주말 낮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버스를 한 번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한 번 더 환승. (서울을 떠나고 나니, 이동시간이 두 배가 되었다.) 버스에서는 앉아갈 수 있지만, 지하철에서는 웬만해선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겐 임산부 뱃지가 있다. 배도 나오기 시작하고 있고. 하지만, 그 대단한 입덧 덕분이었는지 내 팔다리는 임신 전보다 얇아졌고 펑퍼짐한 원피스는 내가 임산부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드는 실루엣을 만들어 낸다. 가방에 임산부 뱃지를 달고 임산부석 앞에 서있다가 누군가 양보해주면 앉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나는 여태껏 가방 속 파우치 안에 가지고 다니면서 한 번도 임산부 뱃지를 꺼낸 적이 없다. 양보는 의무가 아니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비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뱃지를 다는 게 영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게다가, 임산부 자리에 앉은 임산부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시비를 걸고 때리기도 했다는 뉴스가 이틀이 멀다 하고 귀에 들려온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내 체력이나 에너지도 예전 같지 않고 그 와중에 나보다도 더 연약한 존재를 지켜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임산부 뱃지를 달지 않고 외출했던 지난 주말,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다. 아무도 양보해주지 않았다. 나는 뱃지 없이는 아직 임산부 티가 나지 않는가 보다. 거울로 보면 배가 수박만큼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남들 눈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아직은 배가 더 나와야 하나보다. 자리마다 맨 끝 칸에 있는 임산부석을 탈환하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람이 많을 땐 그 앞에 서는 것조차 어렵다. 임신하기 전에는 굳이 저렇게 많은 임산부석을 둬야 하나 그렇게까지 임산부가 많은가 싶었는데, 임신하고 나니 거리엔 온통 배 나온 임산부로 가득한 것 같고 임산부석 앉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되었다.


조금씩 힘들어진 나는 노약자석으로 향했다. 자리가 없을 때면 노약자석에 앉곤 했다는 임신 선배인 친구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노약자석엔 노인들과 몸이 불편한 분들이 주로 앉고 가끔 아이들이 앉기도 한다. 그리고 임산부인 내가 있다. 어릴 때 우연히라도 노약자석에 앉았던 적이 있었던가. 처음이거나 기억이 안 날만큼 오랜만인 것 같았다. 어딘가 모르게 열외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왜?



노약자석에 앉아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임산부 뱃지를 달지 않는가? 뱃지를 달지도 않고 왜 지레 겁내고 있는가. 피해의식이고 못난 마음인 거 아닌가? 임산부임을 알리는 게 창피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언제까지 임산부 뱃지를 가방 속에 넣고만 다닐 것인가. 이게 뭐라고 용기 따위가 필요하기라도 한 건가.


남의 눈치만 보는 사회에서 자라나 어느 날 갑자기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거라고 말한다면 변명이 될까. 임신 전에 임산부를 바라봤던 나 자신의 시선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고 하면 적절한 이유가 될까. 국가가 만든 임산부석과 뱃지는 이렇게도 무용지물이며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임산부를 반기지 않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삶을 녹록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사회의 탓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전부 다 이유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 무의식 아래 저 어두운 구석 안에는 이런저런 생각의 파편들이 뒤죽박죽 쌓여 뒤엉켜있겠지. 곧 내 배는 뱃지가 없어도 내가 임신부임을 한껏 드러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한 번 가방에 임산부 뱃지를 달아볼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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