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4년을 살던 신혼집을 떠나 새로운 동네와 공간으로 터전을 옮겼다. 안 그래도 밤새 퍼붓던 비와 건너편 아파트의 고장 난 소화전 사이렌 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아침에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 비는 내 마음을 졸이게 했다. 결혼식을 올리던 날에도 비가 내려 '얼마나 잘 살려고 그러나'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사하는 날에도 어김없이 비가 몰려왔다. 다행히도 비는 금세 잦아들었고 무사히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마치 지나간 마음들을 씻겨내주기라도 하는 것 같아 그저 불쾌하기만 한 비는 아니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이사하고 며칠간 집 정리의 연속인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로움 투성이인 것들 사이사이에 지난 삶의 흔적들을 어떻게 비집어 놓을까 궁리를 하는데에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 끝이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작업이 계속된다. 찌는 듯한 폭염에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잡동사니들은 한없이 널브러져 있는 가운데, 그래도 뭔가 새로 시작하는 듯한 뒤숭숭한 마음에 게을러지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루 종일 노동한 몸은 피곤에 절어 나를 금방 잠에 들게 했다. 평소 아주 좋지 못한 취침 루틴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올빼미 인간인 나는 적어도 새벽 세시는 되어야 잠에 드는 편이었고, 그마저도 tv나 팟캐스트, 스마트폰에 의지를 해야 스르르 눈꺼풀이 무거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밤만 되면 나를 말똥말똥하게 했던 온갖 잡생각들은 몸이 너무 편해서 그랬던 거였는지 피곤한 몸은 나를 금세 잠으로 안내해 다시 일찌감치 잠에서 깨웠다.
새벽 다섯 시 오십 분쯤 눈이 떠졌다. 여섯 시가 다 된 시간이기에 누군가에겐 아침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연례행사처럼 쉬이 오지 않는 기상 시간이기에 새벽이라 말하고 싶다. 정리가 덜 된 하지만 텅텅 빈 거실에 나와 바닥에 앉아 생각했다. 뭘 할까.
이사 오기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요가를 하기로 했다. 임산부가 겪는 그 모든 증상을 온몸으로 다 겪고 있는 나는 외출해서 돌아다닌 날이면 왼쪽 골반뼈가 욱신거렸다. 평소에도 체력은 좋지 않았지만, 임신 후엔 온갖 유난스러운 증상을 다 겪으며 매일매일을 예측할 수 없는 컨디션 기복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요가매트를 피고, 노트북을 가져와 유튜브에 '임산부 요가'를 검색했다. 수많은 영상들 중 골반에 좋은 20여분짜리 영상을 하나 골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아침에 혼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있는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는 게 꽤 기분이 좋았다.
시원한 물을 한 잔 벌컥벌컥 마시고 정리안 된 책장에서 산문집 하나를 꺼냈다. 세네 달 전 여행길에 샀던 산문집은 앞부분만 읽고 몇 달간 내 눈길을 받지 못하고 손을 타지 않았던 책이다.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한 장 한 장 공감하며 읽어 내렸다. 조금은 감탄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생각했다. 아침에 읽기 참 좋은 책이라고. 감정이 너무 과다하게 흐르는 밤보다, 마음의 여유가 덜한 낮보다, 아침은 더 책 읽기에 좋은 시간인 것 같다. 너무 말랑하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적당한 시작의 기운이 흐르는 시간. 짧게 30분 정도 읽어 내렸다. 그리고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미련 없이 책을 덮었다. 욕심내지 않고 하루에 이렇게 조금씩 야금야금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의 할 일들을 시작했다.
늦은 밤에 글이 훨씬 더 잘 써지고 영감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생각하던 나이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아침 루틴을 놓치고 싶지 않다. 혼자인 기분이 너무 좋다. 아침 루틴이 아니더라도 프리랜서인 나에게 혼자인 시간은 넘쳐나지만, 물리적으로 혼자인 것 말고 모두가 잠든 혹은 시작하기 조금 이른 시간에 혼자 먼저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 기분을 즐기고 싶다는 말이다.
그렇게 3일 동안 이 루틴을 지속했다. 오늘은 요가를 하고 있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기분 좋은 꼬르륵이다. 얼음물을 마시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바나나를 하나 꺼내 먹었다. 그리고 또 산문집을 펼쳐 들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밥맛도 더 좋은 것 같았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낭설은 그 아침형 인간의 한 시간이라도 더 빼앗아 회사에 충성하고 가성비 높은 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세상의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다만 아침 시간이 좋은 이유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나만의 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헐거운 시간들이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하루의 일과를 즐겁게 상상하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부디 나의 마음가짐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고 내일도 계속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