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가 뭔지는 몰라도

by 흔적




모성애는 없다가 갑자기 폭발하듯 생겨나는 게 아니라, 내 뱃속 안의 작은 존재가 자꾸만 자신을 알아달라며 발로 뻥뻥 차대는 탓에 서서히 조금씩 준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발가락과 손가락 각각 10개를 확인하고 옆모습을 바라보게 되면서 실감 나지 않았던 일들은 점차 익숙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주변에서 물려주는 육아용품이나 선물들이 집안의 풍경을 조금씩 달라지게 만들고 있다. 아직은 쓸 일이 없는 그 물건들을 지나칠 때마다 또 한 번 인생 가장 큰 전환점을 맞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저마다 아이 낳을 준비를 하며 육아책을 사들이고 태교여행을 떠나며 전에 없던 취미 생활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아이를 위한 것이든 아니든 그것들은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숙제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엄마들은 태교를 하지 않으면 어딘가 모르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나도 잠시 고민해보았다.



아이를 위한 태교를 해야 하나. 지금 내 생활에 딱히 태교라고 내세울 만한 일과들은 없다. 순산을 위해 요가를 매일 아침 하는 것과 먹는 것을 조금 신경 쓰는 정도. 선물 받아 읽다만 육아책이 한 권 책장에 꽂혀있다. 얼마 전 친구는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어줄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글쎄, 난 왠지 모르게 그런 건 정말 취향에 안 맞는다.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태교음악이나 힐링 음악들도 어쩌면 하나같이 다 클래식인지. 심신의 안정은 클래식에서만 오는 것일까. 평소에 듣던 탐 미쉬(Tom misch)나 브루노 메이저(Bruno Major)의 음악이 더 아이와 나를 안심시켜 줄 것만 같다.


태교와 담쌓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지 않는 것들을 하는 게 태교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그림이나 뜨개질, 바느질, 컬러링 이런 것들도 내키질 않는다. 아이를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개인의 성향과 기호의 차이가 아닐까. 물론, 나도 내게 맞는 태교가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고 찾아보기는 했다. 딱히 찾지 못했을 뿐..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요즘 나는 더욱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더 깊어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시도하고 찾도록. 육아전쟁이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이 모든 것들을 잠시 쉬어가야 할 것 같은 예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며 하는 것들이 우리 아이에게도 좋은 태교가 되지 않을까 싶은 나만의 합리화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콘텐츠를 고민하는 일들도 나름 태교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되지 않을까? 몸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열심히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생각을 확장하고 싶다. 그 흐름이 아이를 낳은 후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질 수 있도록. 뱃속의 아이도 함께 보고 듣고 감탄하고 있다면 좋겠다.


나는 점점 더 나다워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예전의 내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나 혹은 앞으로 변해갈 내 모습을 통해 바라보는 나다움.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았다. 임신 전이었다면 이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강조하며 극단적인 사건으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엄마와 아이의 유대감 이전엔 엄마라는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온전히 건강한 정신과 마음만이 아이를 충분히 올바르게 감싸줄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엄마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고들 하는 건데, 정말 아무나 같은 나라는 사람이 나 자신의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내가 아닌 또 하나의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엄마'라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게 내가 조금이라도 중심을 잘 잡고 나다움을 갖춰야 할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왜 임산부 뱃지를 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