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온도의 감정은 설계되지 않으면 오해가 된다.
나는 감정을 설계한다.
그날 내가 했던 위로도 그 설계의 하나였다.
그날은, 친구가 부모님에게 꿈을 무시당해 슬퍼하던 날이었다.
그 애는 내 소중한 친구였고,
나는 그 슬픔을 조용히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늦은 밤,
학원이 끝나자마자 갈 데 없다는 친구를
텅 빈 아파트 놀이터로 데려가 위로했다.
친구를 위한 자판기 율무차.
가볍게 삐걱이며 흔들리는 그네.
단둘이서 감정이 통한, 고요한 밤의 빛.
내 다정함은 울음을 멈추게 했고,
그 애가 다시 용기를 되찾게 했다.
이건 내게, 친구로서 당연한 기쁨이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때 당장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그 말에 슬퍼서 나선 게
애정이 고픈 친구에게 너무 급한 열기였을까.
“있잖아, 나 할 말 있어.”
갑자기 단둘이 불러낸 그 애를 보고,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날 이후, 그 애의 말투는 어딘가 조심스러워졌고.
나는 매번 ‘설마’ 하다가도,
혼자만 예민한 걸까 자책하곤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 너 좋아해. 너도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설렘과 두려움이 가득한 그 눈동자.
애써 땀이 찬 두 손을 뒤로 숨긴 어색한 미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가 띄운 다정함은 분명 도착했다.
그치만, 너무 가깝게 닿아버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안해.”
나는 그애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의 ‘좋아함’은 그애와 달랐다.
그애가 내 위로에 다른 이름을 붙였듯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그저,
그 애가 너무 외로워 보였기 때문에
다정해지고 싶었던 거였다.
말없이 흐른 침묵 끝에,
그 애의 눈에서 떨어진 건 눈물이었다.
그 애는 내게 사랑인 줄 알고 입을 맞췄지만,
나는 사실 장미였다.
잠시나마 향기로 위안을 주고 싶었는데,
힘든 그애는 그 모두를 사랑으로 껴안았다.
목 마른 자가 바닷물을 마신 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사람은 힘들수록 시야가 좁아져서,
작은 다정함조차 세상 전부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러니 그 사람이 그렇게 오해한 것도,
그걸 사랑이라 믿은 것도 잘못이라 할 순 없었다.
나는 그걸 안다.
그래서 더 미안했고, 더 안타까웠다.
친구로서 그애를 좋아한 건 진심이었다.
그걸 거짓처럼 흘려보낼까도 생각했다.
“네가 널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 진짜 너무하다.”
“널 응원한 마음은 진짜야. 그치만, 나는……”
다정함을 계속 내미는 건,
그 사람을 더 목마르게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그걸, 그날에서야 알아버렸다.
“……친구로 다시 지낼 순 없어?”
“너도 알잖아.”
그래서 나는,
내 다정함의 거리를 비웠다.
채워지지 않은 다정함은
안 그래도 힘든 그 애를 더 아프게 했을 거다.
그래도 그 차가움이,
갈증에 허덕이던 그애에게
내가 줄수 있는 유일한 온도였다.
관계는 조용히 멀어졌고,
그게 끝이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사이가 되었다.
다정함은 설계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겐 상처로 흘러간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다정함의 온도를 조심스럽게 조절하기로 했다.
말 한 마디,
손 한 번이
때론 너무 가까웠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감정은 여름 끝자락에 남았다.
물 위에, 잠깐 떴다 가라앉은 장미 한 송이처럼.
그렇게 나는 내 다정함에 정제된 서늘함을 하나 더했다.
누군가에겐
그 선이, 너무 늦게 도착한 온기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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