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에 유학을 한다는 건, 라면 장인이 된다는 뜻이다.
중고등학생 유학생들의 기숙사에는 가스레인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안전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레인지로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나 참치캔, 햇반 정도가 공부하는 학기 동안의 한국식 식사의 전부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레토르트 음식도 없었다.
주말이면 친구들 몇 명이 한 방에 모였다. 라면 하나씩 전자렌지로 끓여 놓고 둘러앉아 먹는 그 시간이 좋았다. 별거 아니지만, 행복했던 기억.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라면을 종류별로 시식해본 라면 장인이 되어갔다.
나는 쫄깃하고 두꺼운 면을 좋아했다. 우리 집에서는 신라면을 늘 먹어 왔기에 나는 신라면이 라면의 기준이었다. 최소 굵기 ‘신라면’부터 수타면, 너구리 정도의 굵은 면을 선호했었다.
반면 스낵면이나 참깨라면처럼 얇고 금방 퍼지는 면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컵라면 버전의 참깨라면을 접하게 된 건 아마 서른이 넘어서였을 거다. 방송국에서 당직 서던 어느 밤, 간식 창고에서 라면을 찾았다. 하지만 남아 있는 건 참깨라면뿐이었다.
딱히 좋아하는 라면은 아니었지만, 먹었고 국물이 너무 맛있는 거다. 그게 아마, 내가 참깨라면을 다시 보게 된첫 계기였던 것 같다.
예전에 내가 기억하던 그 맛과는 꽤 달랐다. 국물이 훨씬 부드럽고 고소하게 느껴졌고, 그제야 왜 참깨라면이 오랜 시간동안 단종 되지 않고 시장에서 살아남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했다.
유행처럼 컵라면 국물에 계란찜 해먹던 시절이 있었는데, 참깨라면은 그중에서도 진짜 원탑이다. 고소함의 깊이가 다르달까.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린다. 국물에 누룽지 + 달걀 두어개 톡 깨 넣고 계란찜을 하면 천국이다.
다이어트할 때도 컵누들 버전이 있어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다. 사실 이 라면은 면보다도 국물에 진심인 음식이라, 면이 얇든 당면이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국물만 있으면 된다. 국물 한 모금이면, 꽤 든든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