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위로

가장 필요한 순간에 조용히 나를 안아준 인연

by 수수

난임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무겁고 외로운 단어였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용량의 호르몬 주사를 맞은 지 몇시간이 지나자, 내 감정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과배란 주사를 맞은 후 찾아오는 두통, 극심한 감정기복,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 이유 없는 눈물을 눌러 담으며 버텼다.


아픈 것 보다도 버거웠던 것이 이 과정에서 혼자라는 것,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난임 부부조차 둘이 겪지만 나는 미혼이기에 혼자 겪는다.


서른 중후반에 결혼한 친구들에게 혹시 시험관이나 난자동결 같은 경험이 있을까 싶어 조심스레 연락을 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아니”, “나도 잘 몰라” 정도였다. 대화는 대부분 거기서 끝이 났고 갑자기 전한 무거운 소식에 침묵으로 답장이 왔다.

그 말들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감은 마음을 더 외롭게 만들었다.


와중에 갑자기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7년 전쯤, 외국인 교회에 잠깐 나갔을 때 알게 된 싱가포르인 언니.
그 언니가 한국에 살면서 난임 진단을 받았었고,

뭔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던 희미한 기억.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처를 찾아 메시지를 썼다.


“Hope you’ve been doing well. I wanted to share something personal — I recently had my annual health screening, and for the first time, I opted to include the ovarian reserve (AMH) test. I just got the results this past Sunday. Turns out, my ovarian age came back as 48, which is 12 years older than my actual age (I’m 36). The FSH level was also high, and the doctor told me that even if I go through egg retrieval, I might only get one egg — if any — and there’s a high chance it won’t survive the whole process. They said it might already be too late for natural pregnancy, and early menopause could happen within 2–3 years. I went to the OB-GYN again today and booked an egg freezing cycle — at least to try. I vaguely remember you went through something similar a while back. Would you mind sharing what steps you took afterward, and how you decided what to do? Feeling a bit overwhelmed, honestly. Would really appreciate hearing from you.”


진심을 담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답장이 안 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년 만에 진지한 장문을 보내면 답장이 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몇 시간 뒤, 예상 밖의 따뜻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런 일 겪고 있었구나.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 전화가 편하니 메시지가 편하니? 네가 편안한 쪽으로 연락할게.” 언니는 마치 나를 오래 기다렸던 사람처럼 대답했다.

자신이 그때 받았던 진료들—산부인과, 한의원, 정신과까지 총 6명의 의사—자신의 수치가 얼마나 낮았고, 어떤 마음으로 난자동결을 결심했으며, 그 모든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언니가 겪었던 일들은 내가 겪은 것과 같았다.


내가 시술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언니는 중간중간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오늘 컨디션 어때?” “주사 맞은 날은 특히 감정 조심해야 해.” 그리고 내가 “가족이 너무 몰라줘서 서운하다”라고 하자, 언니는 말해주었다.
“나도 그랬어. 가족은 가끔 너무 가까워서 더 모르는 것 같아.”


언니가 말했다. “내가 한국에서 처음 진료받을 때, 네가 병원에 같이 와준 거 기억나? 한국말이 안 돼서 정말 막막했는데, 네가 옆에 있어서 큰 힘이 됐어.”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니가 병원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까지 보내줬는데도, 사진 속 브이자를 그리고 웃고 있는 내 모습, 긴장한 언니의 얼굴이 모두 낯설기만 했다. 내겐 그저 아무렇지도 않았던 짧은 동행이, 언니에겐 몇 년이 지나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 ‘도움’이란 건 반드시 거창하거나 의도적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건 결국 아주 사소한 마음씀, 아무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건넨 다정한 시선과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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