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왜 ‘아기를 갖는 삶’을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 나이는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
생물학적으로도 늦은 나이다.
이제 아이를 낳는다 해도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될 무렵이면
나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정말 아무런 의심도 없이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
그게 내 인생의 다음 단계가 될 거라 믿어왔다.
그리고 그 다음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40대, 50대, 60대.
막연히 멀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것도 참 이상하다.
내년, 내후년이면 바로 그 40대인데
나는 늘 그 시간들을 ‘먼 미래’처럼 여기고
마치 준비된 수순처럼
결혼과 출산으로 인생이 마무리된다고 믿어왔다.
38이 된 올해에서야
처음으로 그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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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 쓴 일기장 한 귀퉁이에
‘내 미래 계획’이란 제목으로 미래를 상상한 적이 있다.
24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24에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웃기다.
아마 20+4는 24니까
24에 대학을 졸업한다고 생각했나보다)
26살에 결혼하고,
28살에 첫째를 낳고,
29살에 둘째를 낳는다는 계획.
장래희망은 디자이너, 과학자, 작가,
세 가지나 써두었지만
아이를 둘 낳는 순간, 내 인생은 멈춘다.
커리어나 삶의 전개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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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엄마는 60년대 중반, 대구에서 태어났다.
국립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고
서울에서 일하던 아빠와 선을 보고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일을 멈췄다.
그 다음 해에 내가 태어났고,
4년 뒤엔 내 동생이 태어났다.
여기까진 그 시절의 전형적인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마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삶의 새 장을 열어갔다.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엄마는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시작했고,
열네 살이 되던 해엔
우리 남매를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강남에 영어 학원 사업을 했다.
사업이라기엔 작지만,
그 시절 억대 연봉을 받던 여성은 드물었고,
엄마는 언론사에 다니던 아빠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
⸻
아이러니하다.
엄마는 그 시대의 틀을 깨고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삶을 확장해온 사람이었다.
나는 그 엄마를 보고 자랐는데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거기서 멈추는 삶을
‘내 미래’라고 생각했다.
나는 왜 여성의 공식에 의심없이 나를 집어 넣어놓고
그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그렇다면 그 공식에 맞게 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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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무언가를 배우는 데서 기쁨을 느꼈고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으며 살아왔다.
사실 나는 20대 후반까지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다.
그 시간 대부분을 일과 나에게 집중했다.
연애할 때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면,
아프긴 했지만 참지는 않았다.
멈추지 않고,
배우고, 일하고, 내 기준을 지키며
내 삶을 나답게 걸어왔다.
결혼을 하고 싶었다면 결혼을 하기 위해
외모 가꾸기와 연애를 최우선으로 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시간 낭비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왜,
결혼과 출산은 그렇게 당연하다고 믿었던 걸까?
그 시절 나는
‘엄마처럼 다 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과
‘그래도 여자 인생은 결혼이 최고고 거기까지지’라는
암묵적 사회적 룰 사이에서
양손에 서로 다른 것을 쥔 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개는 다른 것이었는데.
나는 실은,
엄마처럼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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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이 있다.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인생의 ‘필수 조건’도,
‘정답’도 아니라는 것을.
그걸 하지 못하면
모든 게 망가지는 게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 삶에는 다음 장이 있다.
그리고 내가 쌓아온 것도 남아 있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하지 않아도 내 삶은 여전히
충분히 살아 있는 삶이다.
내 인생이 어떤 선택으로 채워지든,
그건 끝이 아니라
다음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