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깨고, 나를 옮긴다

30대의 독립 - Better late than never

by 수수

어릴 때부터 집안은 규율과 지적이 강하게 작동했다.

사소한 잘못에도 목소리가 높아졌고,

잔소리와 지적은 생활의 일부였다.

나는 그 환경이 특별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자랐다.


성인이 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떻게 화장하는지,

몸무게는 어떤지, 누구를 만나고 결혼을 할지까지

끊임없이 간섭이 이어졌다. 전제는 늘 같았다.

나는 스스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올바르게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었다.


난자 보존을 시도한 것이 전환점이었다.

내 몸과 미래를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강한 반대와 제약에 부딪혔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은 그것을 보호와 헌신으로 여겼고,

나는 간섭과 통제로 경험했다.


갈등은 동생에게도 번졌다.

내가 힘든 심정을 털어놓자 동생은 듣기 싫다고 했다.

그 말에 화가 나서 사실을 과장해 인터넷에 글을 썼고,

이후 동생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동생은 갈등의 원인보다

가족이 외부에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는 점에 집중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되었고,

그것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동생은 “어리고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해받았고,

나는 “누나니까 이해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감정을 네 단계로 정리했다.


첫째, 억압감이었다.

매일 밤 퇴근한 나를 불러 두 시간 넘게 이어지는

고함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폭력처럼 느껴졌다.

경제적 선택이나 의료적 결정까지

허락받아야 하는 현실은 답답함을 키웠다.


둘째, 양가적 감정이었다.

부모님이 나를 키우고 지원해 준 사실은 분명했기에,

고마움과 원망이 동시에 떠올랐다.


셋째, 시선의 차이를 자각했다.

부모님에게는 헌신이었지만, 나에게는 통제였다.


넷째, 균형의 선택이었다.

부모님의 공은 인정하되, 그것을 이유로

내 삶까지 간섭받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최근 몇 달은 특히 힘들었다.

눈에 띄는 것만으로도 지적이 이어졌고,

말투 하나에도 태도 문제가 지적되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늘 참는 쪽은 나였다.




결국 나는 집을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

투자 목적으로 산 빌라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 때문에 독립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더는 같은 공간에서 지낼 수 없었다.

무엇에 홀린 듯 지난주의 나는 방을 알아보고 있었다.


수도권의 오래된 아파트를 월세로 계약했다.

다소 비싸게 느껴지지만 같은 값의 서울 중심지라면

겨우 방 한 칸 원룸일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회사까지는 30분 밖에 안 걸린다.

방이 세 개나 되어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다.

또 남향이라 채광이 좋고, 경비가 있어

최소한의 안전감이 있다.


집 계약 사실은 아직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통보할 계획이다. 모든 것을 미리 설명하기보다,

결과를 보여주는 편이 지금의 관계에서는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아니면 아예 말을 안 하고 비밀공간으로 사용하던지.


집은 오래되어 손볼 부분이 있다.

입주 청소 정도는 전문가에게 맡길 예정이다.

이 집은 완벽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이 집은 완벽하다. 경제적 부담은 있지만

지속 가능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다.


앞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하다.

부모님의 반응이 두렵고 다시 끌려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러한 시도를 지금보다는

더 이르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한 것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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