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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집집마다의 이야기

by 수수

나는 김밥을 정말 좋아한다.

밖에서 사 먹는 참치김밥도 물론 좋지만,

집에서 막 말아낸 김밥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따끈한 밥에 참기름 소금간을 하고

김에 펼쳐 재료를 올려 단단히 말아내면,

그 순간부터 끝이다.

썰면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주워먹는다.

그릇에 담고나면 더 본격적으로 먹게 되고.

8줄 말았는데 1줄 남을 때도 있다.


밥 한 공기를 그대로 먹으면 충분한데,

김밥으로 말아 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분명 한 줄에 밥 한 공기 분량이 들어가지만

막상 먹어보면 턱없이 적다.

기본 두세 줄은 먹어야 성이 찬다.

그런데 밥 두세 공기를 그대로 먹으라 하면

많다고 느껴진다. 대체 왜 그런 걸까?


김밥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양 때문만이 아니다.

김밥은 특히 집집마다 담기는 재료가 다른 것 같다.

그 조합 속에 각자의 이야기가 다르게 녹아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텔링이다.


어릴 적 친구네 생일잔치에서 맛본 김밥에는

오이와 햄이 들어 있었다.

내게는 낯설었고, 왠지 ‘김밥 같다’는 느낌이 덜했다.

완전 다른 음식 같았달까.

같은 김밥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신기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음식인데도, 어떤 집은 고기를,

어떤 집은 햄을 넣고, 또 어떤 집은 오이를 넣는다.

그 안에는 그 집만의 식탁과 습관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우리 집 김밥은 불고기 양념이 된

소고기 소보루에 시금치, 당근, 달걀 지단,

단무지, 우엉조림이 기본이다.

달콤짭짤한 고기와 채소가 어우러진 맛에

단면은 초록, 주황, 노랑, 갈색이 섞여 아주 화사하다.

엄마는 그 레시피를 외할머니에게서 받았다고 했다.

그러니 그 김밥은 단순히 우리 집의 취향뿐 아니라,

외할머니의 식탁까지 이어져 있는 셈이다.


집집마다 재료가 달라 고유한 이야기가 담긴 음식인데,

심지어 소풍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소풍은 안 가더라도

김밥 싸는 날은 별일 없어도 늘 설렌다.

그래서 나는 김밥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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