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만지는 기분
암을 만지는 느낌은 썩 좋지 않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
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
라고 하면 암세포가 억울해할까? 본인도 살자고 하는 짓이긴 할 텐데.
어쨌거나 대학병원에서 외과의사들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암을 수술하는 것이다. 암의 종류야 다양하기는 한데 일단 수술로 치료를 할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암은 자라고 우리 몸의 정상세포를 파괴하는 놈이기 때문이다. 외과에서 주로 보는 암은 수술하는 장기랑 같은데 유방암, 대장/직장암, 위암, 소장암, 간암, 담도암, 담낭암, 췌장암 등등이 있고 그 외에도 불특정 부위에 생기는 육종(sarcoma)과 같은 암들도 많이 보고 난소암 수술도 산부인과와 협진할 때 많이 본다.
ChatGPT 4.0에게 물어봤다. "암이 뭔지 짧게 설명해 봐."
암은 우리 몸의 세포가 정상적인 성장과 사멸의 조절을 잃고 무제한으로 증식하여, 주변 조직을 침범하고 신체 다른 부위로 전이할 수 있는 질환입니다. 유전적, 환경적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이 있으며, 수술, 방사선 치료, 화학 요법 등 여러 치료 방법을 통해 관리됩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암은 우리 몸의 다양한 세포들 중 한 놈이 맛이 가버려서 주변 정상 세포들을 죽이면서 무작정 증식하는 놈으로 변한 것이다. 그 처음 맛가버린 세포가 어떤 놈인지 따라 같은 장기에 생긴 암이더라도 성격이나 예후가 다르다. 예를 들어 간에 생겼다고 다 같은 암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간실질 (또는 간의 "속살") 세포로부터 왔는지 또는 간 안에 있는 여러 혈관이나 담도 세포로부터 왔는지에 따라 치료약과 생존율이 다르다. 그래서 정확한 병리 진단이 중요한 것이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게 내가 보는 암은 정상 조직에 비해 딱딱하고 모양이 흉측하다.
아주 극 초기에 발견되어 오는 사람의 경우는 암이 잘 안 만져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미 크기가 어느 정도 커진 경우엔 수술 중에 만져진다. 다른 조직들과 달리 딱딱하다. 개복수술을 하게 되면 직접 내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고 복강경수술로 하면 복강경 기구들을 통해 촉진을 할 수 있다.
커져버린 암은 흉측하게 생겼고 징그럽다. 마치 외계 행성의... 화산 입구와도 비슷하달까? 아 스타크래프트 저그 종족의 건물을 지을 때 비슷한 모양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주로 어떤 장기의 암을 보느냐에 따라 가지고 있는 시각이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암은 미학적이지 않다. 조직에서 질서가 없는 혼돈을 야기하며 주변 정상 세포들을 학살한다.
피부암이나 유방암, 또는 다른 밖으로 튀어나온 암을 가진 환자는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지만 복부 장기 안에 생긴 암은 잘 마져지지도 않고 증상도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갑자기 암이 진단이 되면 환자들은 예상치 못하고 놀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몰라서 다행이다. 이런 흉측한 게 몸속에 있다는 것은 너무 자세하게 알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내가 본 암 중에 제일 끔찍하고 가장 징그러운 암 중에 하나는 뱃속에 여기저기 전이가 된 복막전이 또는 다른 말로는 복막암종증(peritoneal carcinomatosis)이다. 복막은 뱃속과 장기들을 전부 커버하고 있는 얇은 막인데 여러 암들이 복막으로 전이한다.
그때 그 환자는 복강경 탈장 수술을 하려고 배꼽을 뚫고 (주로 배꼽으로 첫 구멍을 내서 "배꼽을 뚫는다"라고 자주 한다) 카메라를 넣었더니 소름이 돋았다. 환공포증을 유발하는 화면에 주변 간호사선생님과 전공의들도 놀라서 탄식을 했다. 뱃속에서는 암처럼 보이는 작은 알갱이 같은 것들이 셀 수 없이 뱃속 전체에 퍼져있었다. 사실 처음에 배꼽을 뚫을 때부터 살짝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복막에 암이 심하게 전이된 환자들은 배를 가를 때부터 촉감이 다르다. 단단하고 딱딱하다.
사진을 여기 올리면 당시 느꼈던 나의 소름이 더 와닿겠지만 충격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ChatGPT한테 비슷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위 그림은 아주 귀엽게 나온 편이다.
외과의사는 암을 만지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어느 날 15cm이 넘는 소장 종양으로 인해 소장 천공이 생겨서 응급실로 온 환자가 있었다. 수술방에서 크게 개복을 하고 터져있는 부위를 확인하여 빨리 임시 봉합을 한 후 배를 씻겼다. 그 후 암이 침범한 소장들을 잘라내고 한 손으로 암을 움켜쥐었다. 그 암은 단단하고 컸는데 전체적으로 큰 원형의 모양이었으나 울퉁불퉁하고 마치 더 커지고 퍼지려는 듯이 주변 조직으로 뻗쳐 나가고 있었다.
암에 붙어있는 모든 조직들을 다 절제한 후 두 손으로 암 덩이를 잡고 환자의 몸에서 꺼냈다. 무게감이 꽤 있는 종괴였다. 옆에 준비된 검체 테이블에 덩이를 떨어뜨렸다. 암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몇 kg정도 되려나? 환자의 몸무게가 한 2-3kg는 바로 줄지 않았을까. 그 암 덩이를 보고 그동안 환자들이 수도 없이 내게 물어봤던 질문을 나도 떠올렸다.
도대체 이런 게 왜 생기는 걸까?
암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이것은 그 시작을 알리는 첫 글로 내가 다루는 암의 첫인상에 대해 쓰고 싶었다. 이제 앞으로 이 암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 왜 암이 결국 왜 우리 의학 커리어에서 타파해야 할 최종보스인지 다루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