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젊은 암환자들에 대한 이야기
다 같은 환자라서 그러면 안 되지만
암이 진단된 환자는 젊을수록 마음이 더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의대에서 소아과 수업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소아는 절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싫다거나 소아환자의 보호자들이 힘들다 같은 이유가 아니라 그저 소아 질환들과 치료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아는 나이별로 정상수치도 다르고 같은 병이어도 상황과 연령에 비해 치료도 달라서 외울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성인보다 잘 낫는다는 점이 매력적이긴 하다. 참고로 내가 인턴 때 소아과는 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던 인기과였다. 지금은 어쩌다...
"소아는 작은 성인이 아닙니다!"
소아과 선생님들께서 강의 전에 항상 강조하셨던 말이다. 성인의 미니버전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내가 느끼기엔 성인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다. 소아과 선생님들은 그 모든 것을 연령대별로 외운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내 소아과 친구들에게 소아과를 선택한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감수하고 있다고 했다.
(난 어르신들도 귀여웠다. 특히 80대 할머니들은 너무 귀엽다.)
어쨌든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내겐 성인질환이 더 잘 와닿았고 그중에서 외과를 선택했으니 자연스럽게 암환자들이 내 주 고객이 되었다.
대게 암은 노인질환이다. 소아암도 물론 있지만 암이 생기는 기전을 생각하면 노화가 될수록 암이 발생할 확률이 올라간다. 세포들이 늙어가고 분해가 계속될수록 유전자변형이 생길 확률이 올라가고 그러다가 어느 세포 한 놈이 맛이 가버려서 암이 된다.
내가 보는 환자들은 20대부터 90대까지 연령대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위암은 평균 발병 나이가 60대이다. 그래서 평균이하, 즉 60세 미만의 환자들에게 좀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전임의 시절부터 준비해 왔던 임상시험이 마무리가 되어서 최종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데이터를 정리하고 발표자료를 다듬고 있었다. 이 임상시험은 전이된 말기 위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었다. 등록된 환자들이 많지는 않아서 환자들의 기록을 한 명 한 명 열어보면서 데이터를 재정리하고 틀린 것이 있는지 재검토하였다. 그중 20대 여자 환자의 기록에 멈칫했다.
그녀는 이 임상시험에 등록된 환자들 중 가장 어린 환자였다. 얼굴도 기억이 났다. 이 임상시험 대상자가 된다고 참여할지 동의를 구하면서 해당 연구에 대해 설명하였을 때 씩씩하게 의학발전에 보템이 되고 싶다고 참여하겠다고 했던 그녀의 표정이 생각났다. 분명 두려웠을 텐데. 조기암으로 진단되어도 무서운 게 사람 마음인데 평균수명이 1년 미만이라는 전이성 위암이 진단되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두렵다. 마음이 많이 쓰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두가 그랬던 것 같다. 심지어 그녀는 양부모를 일찍이 여의고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 병원에서 위암의 항암은 내과에서 진행한다. 외과에서 조직검사와 진단적 복강경을 통해 전이성 암을 확인하고 환자는 내과에서 주 치료인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녀의 기록들을 하나씩 열어보면서 검토했다. 중간에 내과 선생님께서 쓰신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과 선생님께: 환자가 너무 젊어 병과 예후에 대해 두려움이 큰 상황으로 지지적 면담 의뢰드립니다."
씩씩했던 그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내과 교수님 진료실에서 환자가 무슨 말을 했을까?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이런 상상을 할수록 마음이 아파오면서 동시에 내가 외과의사인 것에 감사했다. 혈액종양내과선생님들은 정말 대단하다. 정말 힘들 텐데 터미널(terminal, 말기라는 뜻) 암환자들을 어떻게 그렇게 매일 볼까? 난 너무 슬퍼서 도저히 못 할 것 같다. 분명 그 선생님들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슬픔을 극복했겠지?
결국 이 아이는 1년 정도 암 투병을 하다가 부모님의 곁으로 갔다.
암이 원망스러웠다. 의학이 하나의 장편 드라마나 영화라면 암은 무자비하고 악랄한 최종빌런이었다. 예전에 어디서 댓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암이 정복되면 의사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서 암을 완치하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으려 한다는 글이었다. 도대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구하는 의사가 누가 있을까.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추고 쓰린 마음을 달래며 다음 환자의 기록으로 넘어갔다.
젊은 환자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과 불문하고 동일하다. 산부인과에는 특히 젊은 여성 말기암 환자들이 많다. 언제 산부인과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는 난소암이 뱃속에 모두 퍼져서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소장이 여러 군데 막혀서 수술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다. 30대 여자 환자였다.
해당 환자의 CT 영상을 보았다. Frozen abdomen이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암세포들로 인해 배가 완전 "얼어붙었다"는 표현으로 무엇이 소장인지 무엇이 복막인지 전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하나의 커다란 "떡"이 되어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수술은 불가능했다.
산부인과 병동에 입원해 있던 환자를 찾아갔다.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환자는 식사를 하지 못하여 콧줄(코위관, levin tube)을 끼고 있었고 배가 복수와 암으로 팽창되어 있었다. 매우 수척해 보이고 팔에는 살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환자를 눕히고 복부를 만져보았다. 딱딱하다. Frozen abdomen이 맞는 듯했다.
"지금 소장이 여러 군데 막혀서... 식사를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장루(stoma, 복벽으로 장을 꺼내서 변주머니를 만드는 것) 수술인데 암이 너무 퍼져있어서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아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뭐라도... 얜 아직 너무 어려요..."
환자의 어머니가 애원했다. 정작 환자 본인은 애원할 힘도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통보할 때 외과의사는 엄청난 무력감을 느낀다. 왜 내 능력은 여기까지 인 걸까? 나도 살려주고 싶다. 그런데 나는 신도 아니고 초능력도 없다. 내가 무능해서... 아니, 잠깐. 혹시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무능해서 지금 포기하는 것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표준화된 데이터를 통해서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고민이 덜 된다. 그런데 가끔 이런 경우는 가이드라인이 없다. 게다가 환자가 젊으면 의사들은 가이드라인이고 뭐고 더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려고 한다. 최대한 오래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각자 믿는 치료를 권하는 것이다.
"그럼... 실패할 수는 있어요. 그래도 일단 한 번 시도해 볼까요? 근데 배를 열다가 오히려 다른 장기가 손상되고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나요?"
환자와 보호자들은 모두 확률로 알려주길 바란다. 20% 30% 40% 등. 그런데 사실 그렇게 수치화해서 정보를 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나마 경험이 아주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확률을 대략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다.
"확률이 정확히 나와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반반의 확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네... 해볼래요. 부탁... 드려요 선생님."
이번에는 보호자 어머니가 아닌 환자 본인이 목소리를 내었다.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럼 응급으로 오늘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환자 면담을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담당의사였던 산부인과 교수님께서 직접 내게 전화 오셨다.
"아 면담하셨다고요. 네네,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 젊어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있어요. 식사만 할 수 있다면 다시 항암 할 것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수술에서 그 환자의 배를 열었는데 피부와 장이 거의 하나의 떡처럼 달라붙어서 피부만 열고 싶었는데 장을 열었다. 수술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피부봉합을 하였다. 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장 내용물이 상처를 통해 나오게 되었는데 딱 그 부분을 제외하고 아물어서 그것이 장루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정말 천만다행으로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자칫하다가는 장 내용물이 뱃속으로 흘러 패혈증이 될 수도 있던 상황이다. 다만 나는 이 경험으로 다짐했다. 이렇게 암이 심하게 퍼져있으면 함부로 배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젊은 환자가 안타까워서 무모한 수술에 도전한 것이었다.
"요즘 젊은 환자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아... 무섭다."
후배 희수(가명)한테 말했다. 우리 병원은 소위 "4차 병원"이라고도 불리는 병원으로 전국의 환자들이 몰리는 수도권의 대학병원이다. 그래서 그런가? 젊은 암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맞아요 언니... 왜 요즘 들어 더 그런 것 같죠?"
"우리도 자주 검진하고...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보람차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수명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는 세상을 보지도 못한 채 떠나기도 하고 누구는 한 세기를 눈에 담고 가기도 한다. 각자의 생활습관이나 선택들로 인해 병이 생기기도 하지만 대부분 암은... 특히 젊은 환자의 암은 환자의 잘못된 행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잘못이 아니다.
젊은 암환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라린다. 특히 치료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난 젊은 말기 암 환자들을 보면 나 자신의 나약함과 의학이라는 학문의 불완전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인생이라는 긴 영원 속 찰나의 순간에서 밝게 타오르다 꺼진 그 많은 젊은 영혼들이 분명 다른 곳에서도 다시 명량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최대한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하고 다음 환자를 마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