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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wimming Paper

삶이 간지러울 때

by 강민경

Swimming Paper 1화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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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간지러울 때가 있다.

어딘가를 긁어내고 상처를 입히고 때로는 크림을 잔뜩 바르고 문질러대도 해결되지 않는 간지러운 삶, 그 삶은 노력이 아닌 시간이 쌓이는 힘으로 잊혀진다. 간지러움은 사실 느낌의 망각으로 지워지니까. 수영을 시작했던 건, 몸 속이 안달복달 몹시 근지러웠기 때문이다. 시간은 여유롭고 삶은 팍팍한 프리랜서의 시간은 늘 간지러왔다. 사실 필라테스를 배우려고 했었다. 진정한 여유가 눈으로 보이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근육을 늘리고 시간을 숨 쉬면 진심어린 여유가 찾아올 거란 기대. 하지만 더위가 진저리나게 몸을 괴롭히고 있었다. 어느 날 땀이 머리에서 송골송골 맺혀서 다리로 흘러내릴 때 수영장을 지나쳤고, 더위로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홀리듯이 수영을 등록하고 말았다.


물을 정말이지 너무나 무서워했다. 바다나 계곡에서 무릎 위로 물이 차오르는 곳이라도 디디면 발 끝에서부터 차가운 공포감이 위로 올라와 심장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물의 속은 놀이기구를 타거나 고층 건물에서 아래를 보는 공포와는 다른 차원의 공포를 주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쥔 공포의 성질이었다. 한 끗 차이로 삶과 죽음이 갈릴 수 있는 경계의 아슬아슬한 공포.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게도 공포를 극복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극복을 해내야 된다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줄 안다. 물이라는 공포를 극복하고 싶었다. 물의 공포로 증명되는 나약한 성질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는 일일 것만 같았다. 사람은 또 어리석게도 쓸모없는 다짐을 미루고 싶어하는 성질이 있다. 둘 다를 잘 타고난 나는 수영을 배우고 싶었고, 지지리도 미루어두었다. 그 미련함이 다행히 한낮 더위에 꺾였다니,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부푼 공포를 안고 들어간 수영 강습시간, 목까지 차고 넘칠 것 같이 너울거리는 물 속에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공포를 이겨내겠다고 다짐한 마음이 조금 허무해지기도 했고, 안도의 숨이 쉬어지기도 했다. 물에 뜨려면 부력이 필요했고, 물이 무서운 사람에게는 더더욱 센 발차기가 필요했다. “제대로 발 안 차면 물에 못 들어온다”는 장난 섞인 협박을 들으며 낮은 수심 물가에 앉아 발장구를 쳤다. 어린아이들이 치는 물장구는 귀여운 수준, 저 너머 허리에 계란초밥을 메고 물에 들어가려면 발로 물을 내리쳐야했다. 물의 공포를 부수어버리겠다는 듯이 발뒷꿈치를 물 표면에 내리치면 물살이 얼굴에 잔뜩 튄다. 평생 고민해온 물의 무서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굳은 다짐에 비해서는 꽤나 볼품없는 몸짓이었지만, 이 물장구가 앞으로 이어져가는 수영을 띄우기 위한 중요한 부력이었음을 6년차의 아직도 물이 무서운 수영인이 물에 들어갈 때마다 떠올린다. 우리의 삶은 별 것 없는 몸짓에 깨지기도 하고, 정신이 말짱해지기도 하고, 맑은 호흡으로 살아낼 힘을 얻기도 한다.


6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자면 당연히 달라진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영으로 인해서 바뀐 것들은 어쩌면 수영을 하지 않았다면 인지하지 못했을 일들일 것이다. 예를 들어 희귀 난치병을 정신적으로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뭔가를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 것, 분노가 쉽사리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된 것, 땀 흘린 후 마시는 맥주의 진정한 맛, 몸의 균형을 잡듯 삶에도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된 것, 완벽보다는 완벽의 단계에 머무르는 재미, 또 어느 무엇도 완벽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 수영을 안 했더라면 영영 몰랐을 수도 있었던 것들을 지금의 나는 매주 월수금 수영을 하며 매번 새롭게 깨닫는다. 또한 수영장 내에서 여러 명의 친구들을 사귀었고, 우정에는 나이의 제한이 있지 않다는 걸 알았으며, 민낯에 수모를 쓴 사람에게도 반할 수 있고 혹은 그러한 모습의 나에게 누군가가 반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참 재미있다고 여기며 수영의 시간을 보냈다.


삶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감정들을 매주, 매시간마다 마주하게끔 만들어주는 수영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글 속에서 나는 성급했던 팔과 발 놀림을 극복하며 자유형만큼은 누군가에게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얻은 과정, 물 속에서 밖으로 내뱉어지는 숨의 증거들과 피부로 느껴지는 물의 흐름의 시적인 순간의 서사, 무언가를 좋아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 (예를 들어 수영복 쇼핑이나 도움이 되는 수영 유튜브 영상), 마침내 숨이 트이고 누가 봐도 뭘 할 줄 알게끔 보이는 수영의 묘미, 수영을 다니며 알게된 인간의 민낯 등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를 하나씩 꺼내며 결국 좋아하는 건 그 본질에 있다는 걸 그러니까 하나하나 꼽힌 이유는 뭔가를 사랑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자 사랑의 댓가라는 걸 말하고 싶다.


여유의 시간이 견디기 어렵도록 간지러워 시작한 수영은 단순히 간지러운 시간을 긁어준 것뿐만 아니다. 정성스럽게 바디크림을 발라 몸을 매만져주고 뭉친 근육을 풀어 앞으로의 훌렁거릴 시간을 잘 견디게 해주었다. 진저리나게 땀 흘렸던 지난 더위가 잊혀지고, 나는 매해 또 다른 더위를 맞이한다. 공포를 극복하겠다는 시도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과정 속에 서 있으니까. 하지만 그 과정의 끝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의 더위를 잘 견뎌내어 땀을 잘 흘려내고 그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인간으로서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


수영이 모든 사람들에게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그저 글을 읽어줄 당신도 내가 수영을 하는 것만큼이나 삶의 의미를 헤집고 또 뭉쳐쥐어주는 뭔가를 찾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파동을 듣는 일이 가치있기를 바라며.



글, 사진 강민경





Swimming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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