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들으시는 어머님 중에 한 분이 ‘선생님은 보라색이 정말 잘 받으시네요’라고 말하셨다. 연보라색과 보라색의 중간 어디쯤, 남색 한 방울 떨어트린 보라색 니트를 입고서 강의를 하던 중이었다. 보라색은 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색은 아니지만 좋아해서 늘 눈이 가는 컬러다. 엄마는 재수 없는 색이라 싫어했고, 보라색을 좋아한다고 하면 “보라색은 또라이가 좋아한다던데?”라며 괴짜 취급을 당했다. 남들 이야기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편인 내가 보라색만큼은 보기만 하면 이런저런 것에 영향 없이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걸 보면, 보라색을 좋아하는 게 정말 맞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괴짜 취급을 받는 것이 좋았고 그래서 보라색을 좋아하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개념 자체가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면서 보라색을 좋아하는 것이 특별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라색은 늘 마음에 담기는 걸 보면 보라색은 어쩌면 내 몸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라색에 마음 가는 게 당연한 거지.
보라색을 보면 심연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보라색은 노을이 물드는 가장 고점의 시간에, 바닷속 깊은 심연 어느 한 구석에 조용히 존재한다. 스쳐 지나가는 눈길로는 발견하지 못하는 색이자 당연하게 볼 수 있지는 않은 색, 우연히 발견하여 운명처럼 느껴지는 색이 보라다. 내가 자연스럽게 보는 일상에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은 우연의 색이라, 그 우연에 기대고 있는 게 내 삶이라 ‘보라는 내 운명일까?’ 기대어 보는 것이다. 운명에 기대어 살며, 신비로움에 빠져들어 환상으로 사는 삶을 선망하는 나는 보라색을 잘 받는다는 얘기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굳이 이유를 찾는 건 내 삶과 내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일이라, 보라색을 좋아하는 이유도 굳이 찾아보았다. 보라색이 어울린다는 말이 갑자기 나를 훅 건드려서. 보라색을 좋아하는 내가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라색 니트를 입을 때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을 내가 지금 선택했어’라는 생각이어서. 보라색 니트를 입은 내가 그냥 마음에 들어서. 보라색에 마음이 가는 것처럼 내가 나에게 주는 시선이 좋아서.
글, 사진 강민경
인스타그램 @mk_lalala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