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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루일글

블랙아웃 잠

by 강민경



아침에 수영을 다녀와서 밥을 충분히 먹고 앉아있는데 피로가 팔다리에 퍼지는 느낌이 났습니다. 피곤해 못 견디겠다가 아니라 피곤이 전신에 퍼져 나른해지는 느낌이요. 퍼뜩 이건 분명 잠의 기운이다 싶어 이불을 펴고 정자세로 누웠습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자기 전 자주 듣는 유튜버의 ASMR을 틀고요. 생각이 많아 뒤척이는 편인데, 바로 잠에 들지는 않아도 공상이 안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ASMR에 집중하다가 깨었습니다.


잠에 들었던 거죠. 잠이 든 순간의 기억은 사라져있고, 잠에서 깨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잠의 여운이 남은 상태에서 보니 제 몸은 잠에 들고자 누웠던 정자세 그대로였습니다. 기억나는 꿈도 없었습니다. 그저 잠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길래 조금 더 누워있었고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몸을 움직여 봤습니다. 그전까지는 몸이 정자세에서 무너지지 않고 있었거든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서 동작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니 정신도 개운하게 깨서 시계를 봤습니다. 30분이나 지났나 싶었는데 한 시간 반이 지나가 있더라고요. 불면증이 심한 편이라, 약도 안 먹고 잠으로 시간이 그렇게 보낸 것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반갑더라고요.


이렇게 꿈 없이 블랙아웃으로 드는 잠은 피곤을 덜어내는 잠입니다. 평상시보다 조금 더 쌓인 피로만큼만 딱 덜어내는 잠. 쌓인 피로가 풀린다기보다 그저 보다 더 쌓인 피로를 덜어내는, 약간 아쉽고 그래서 더 달콤한 잠.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개운하게 몸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쌓여서 폭발하지 않게끔 피로를 살짝 덜어내는 일은 삶을 좀 더 기분 좋게 만듭니다. 밥 삼시세끼만 챙겨 먹다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요. 그러면 안구 건조 때문에 눈을 못 뜨겠다든지,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 속이 불편하다든지, 일하기 싫은 마음이 쌓여 매너리즘이 찾아온다든지-일상을 살며 더 크게, 자주 보이던 불평불만이 정리되어 판판한 일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저는 그게 가끔은 필요한 일처럼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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