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일글 8월 26일 제주도 여행 편
정오의 햇살보다 노을지는 햇살이 더 뜨겁습니다. 장을 보고 친구 집에 가는 길, 해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빛까지 다 태우고 가겠다는 듯 장렬했습니다. 화살로 쏘는 듯 빛이 눈으로 코로 입으로 어깨로 내리쬐고, 그 장렬함에 감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감자칩 한 봉지를 머리에 대어 겨우 작은 그늘을 만들며 길을 걸었습니다.
친구 집으로 가기 전, 정오에는 한낮 바다를 만나러 갔었지요. 그때도 구름이 해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눈은 뜰 수 있었지요. 오히려 어떻게든 이겨내겠다는 일념하에 눈을 부릅뜨며 바다를 보고 바위틈에 붙은 고동을 들여다봤습니다.
같은 날의 햇빛이 같은 정도로 빛이 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왜 그동안 잘 깨닫지 못했을까요? 정오의 나와 해가 지고 난 이후의 내가 다른 것처럼-정오의 해와 저가는 해는 그 성질이 다를 게 분명한데요. 모든 것은 시간 아래 같지 않음을 미련한 인간인 나는 무심코 깨닫고 매번 놀라는 것입니다.
해는 이미 바다에 빠졌고-내일의 해를 기다리고 있는 깜깜한 저녁, 어제오늘 뜨거운 햇살을 받아낸 제 몸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햇살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줄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어딘가에 머금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또 깨닫습니다. 소멸하기가 그리 쉬운 일도, 당연한 일도 아님을 어리석은 인간인 저는 또 허투루 지나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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