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주말 근무를 겹쳐하면서, 쉬는 날에도 일의 압박을 받아냈어야 했어서, 일을 외면한 시간은 그냥 일을 하는 것과 같아서 머리가 쉬질 못했다. 일할 때 보통 깊은 고뇌에 빠지기보다 멍해지는 상태와 같다고 보는데, 그러다 보니 머릿속이 늘 안개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주말을 확보하거나 혹은 제대로 쉬는 휴일을 정해놓았더라면 쉬는 시간에 가져오는 바람에 안개가 밀려 사라질 텐데. 사람이 길 잃은 상태로, 눈앞이 흐려진 상태에서 오래 갇히면 새로운 곳으로 걸어 나가기보다는 제자리걸음을 하며 자기 위안을 삼는다. 안정적인(혹은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고난이 없는 지금) 곳에 머문다는 안도와 발걸음을 하니 어찌하든 움직이고 있다는 안심으로 성장이 멈춘다. 그리고 나는 가끔 이것이 삶보다는 죽음에 가깝다고도 여긴다.
“일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슬픔에 잠긴 사람은 보통의 감정이라는 반대로 아무런 시장가치도 갖지 않은 것에게 마음이 끌린다. 문명이 지닌 상처이며 비사회적인 감성인 슬픔은 인간을 목적의 당국에 종속시키는 일이 온전하게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상처로 숨 쉬는 법‘ 인용문 중에서
일기를 쓰다 말고 읽은 책 속에서 슬픔의 이야기가 나왔다. 일에 묶여있지만 실은 일하는 시간이 아닌 잠식되어 있었던 시간 속에 나는 혹시 슬픈가? 안갯속에서 헤쳐 나오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사실은 슬픔에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 아닐까. 비사회적인 감정인 슬픔을 외면하지 못하니, 오히려 슬픔을 가장하여 나를 치장한다고 여겨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벗어나고자 하는 건 생기가 멈춰버린 삶, 그것은 슬픔을 다뤄내어 삶의 의지를 증명해내 보이겠다는 지극히 현대 인간적인 삶이자, 내가 지극히 추구하지 않는 삶이었네. 어쩌면 안갯속 제자리 걸음하는 나를 환상적으로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로 나를 꾸며냄으로써, 시장가치를 갖지 않았지만 그저 마음을 끌어낼 수 있는 무언가로. 그것 또한 사실은 원치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굴레에 빠져들어 숨이 막힐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