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일글

4로 시작하며

2026년 2월 11일, 하루일글

by 강민경

요 근래 일주일은 요동쳤다. 예기치 못한 일이 몰아쳤고, 예상됐던 고난에 물을 패러 갔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같은 쓰잘데기 없는 질문 같은 걸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강한 자괴감과 스트레스에는 복에 겨운 즐거운 시간을 같은 강도로 맞닥뜨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쓸데없는 생각 없이 사는 대로 살게 된다. 그래서 찾아온 노화에도 깊이 생각지 않고 ‘어쩌겠어‘라고 손가락으로 처진 피부를 올려보는 것이다.


얼굴 노화는 갑자기 훅 찾아온다고 한다. 36살 즈음에 한 번 그랬고, 요즘 들어 또 ‘훅’ 나이 들어감을 느낀다. 노화와 상관이 없던 나이에서 벗어나 점점 시간을 책임져야 하는 단계로 들어선다는 게 느껴진다. 평범한 길을 걷다가, 아래가 투명하게 보이는 산과 산 사이의 길을 걷는 것처럼 삶이 바뀐 듯하다.


엄마 생일 케이크 초가 몇 개인지를 세면서 잊고 있던 세월의 흐름이 확 다가왔다. 찬찬히 들여다봤어야 할 시간을 뒤로 미루다가 한꺼번에 와르르 받아버린 듯했다. 폭포수가 떨어지듯 마음도 쿵 하고 떨어졌다. 내가 놓친 것들의 무게가 얼마나 될지, 그걸 확인해 봐야 한다는 게 무서워졌다. 엄마의 나이도, 그만큼 지나가버린 나의 시간도, 버거워진 삶의 중량도.


10살도 채 되기 전, 밤에 누워서 ‘내가 죽으면’ ‘엄마와 아빠가 나이 들면 그래서 내 곁에 사라지게 되면’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까만 우물에 들어가 버린 듯 했다. 너무 무서워서 방에서 나와 엄마 옆에 누웠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갑절이나 더 긴, 미래의 시간이 통째로 사라져 버리고 나 혼자만 남겨졌을 때를 상상하는 건 매우 공포스럽다. 거칠게 무섭다. 시간이라는 건, 맞닥뜨린 것만 잘 보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의 무게와 지혜는 무겁고, 그걸 미리 감당해 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폭포수 아래에서 1톤의 물을 맞는 것과 같다.


10살의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현명함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요즘 무서운 건, 그런 현명함 없이 나이만 먹었을까봐.


나는 이제 새롭게 바뀌는 나의 앞자리에 다가선다.

무서운 생각이 들지만서도, 내가 지나온 시간을 빽 삼아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그 첫 시작-다짐에 담긴 설렘을 좋아한다. 그 설렘이 시간이 가진 무게를 견뎌낼 수 있으리라고, 희망같은 걸 걸어보는 거다.

(요즘 만나이로 센다지만, 나는 새로운 숫자를 맞이하는 것에 조금 더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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