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에서 단발머리로 살아온 시간은 짧은 편이다. 단발머리를 한 건 온전한 내 의지에서라기보다는 ‘해야만 하는’ 무언가의 이유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단발머리가 되었던 건 선생님의 “긴 머리는 더워 보이니 머리를 자르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어른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무서운 법과 같았던 나는 항상 묶고 다녔던 머리를 단번에 잘랐고, 그 이후 귀밑 1센티미터 교칙을 가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단발머리가 익숙해졌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오기로 머리를 길렀고, 단발 규정이 풀리기 전까지 전교생 중 제일 긴 머리로 남아있었다. 단발을 처음 잘랐던 그 시작이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억압을 가진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학교에 다니면서 단발이 법과 같이 존재하는 그 압박에 괜히 저항하며 살았다.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기에 나의 저항이 뭐 그다지 대단하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저항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그저 스스로 나에게 주어지는 말도 안 되는 억압을 이겨나가는 것에 작은 희열을 느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길었던 머리를 망설이지 않고 잘라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많이 힘들고 방황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묵혀왔던 과거를 잘라낸,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단발머리였다. 아나운서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상한 머리를 모두 잘라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어떻게 보면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해야만 하는 무언가의 이유가 있었기에 온전히 내 의지로 원해서 자른 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어울리지 않는 게 눈에 보였지만, 뭔가에 도전하고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내가 옳게 보여서 단발머리를 몇 년 간 고수했다. 나이 들어 보이고 목도 짧아 보이는 단발머리를 스스로 어울린다며 고수하고 불안했던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은 결국 또 하나의 나를 향한 억압이 되었고 그걸 벗어나기 위해 나는 머리를 다시 기르기 시작했다.
단발머리를 하고, 단발머리에서 긴 머리로 바뀌어가는 과정에는 모두 억압을 느끼는 감정,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희망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이 담겨 있다. 쉽사리 유지하기 힘든 나의 단발머리, 언제쯤 온전히 내 마음을 다해 어울린다는 마음을 오래 간직할 수 있을까? 아직은 어깨를 넘어가는 긴 머리가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