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가 일을 잘합니까?>

by 나언

오늘은 우연히 담배에 있는 종이에 펜이 나오는지 줄을 그어보았습니다. 아, 이중섭 작가는 소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때로 담배갑에 종이에다가, 소의 그림들을 여럿 그렸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도 유명합니다.

오랜 예술가들의 슬픔을 달래는 궐련탑은 그림을 쓰고 글을 그렸고. 산업화 이전 시골에서 자라던 많은 농부들은 고락을 함께하며 소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우골탑을 쌓는 날에, 돌아오며 농부들은 조금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어른들이 젊었던 시절에도 명문대는 있었지만, 누구도 다른 이의 우골탑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의 간판은 달랐어도, 같은 소의 가치를 서로가 이해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잘난 간판이 아니기에, 현대처럼 심한 서열주의에 슬퍼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러다가, 황희 정승의 일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농부가 소 두 마리와 논을 갈고 있었답디다.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농부는 귓속말로 황희 정승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습니다.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

황희 정승은 그것에 의아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농부가 말했습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어느 한쪽이 일을 더 잘한다고 하면, 그 말을 듣는 다른 소가 기분 나빠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많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비슷한 등록금을 내면서. 과거와 같은 소로 탑을 쌓으며 대학을 다닐 것인데. 문득, 담배갑 종이에 펜이 나오는지 확인을 하다가, 도화지에 그린 그림도 소였고, 담배갑 종이에 그린 그림도 소였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다른 간판을 지녀도 누구나 등에 소의 뼈를 담고 다니던 시대.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이제는 서로를 감싸기보다, 내 소가 더 비쌌다며 자랑하는 시대.

검은 소가 일을 잘합니까. 누런 소가 일을 잘합니까.

지방대를 혐오하는 단어들이 생겨나고, 서연고로 시작되는 대학의 라인업들이 있습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이러한 것들이요.

최근에는 이런 이야기도 만났습니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너는 얼마나 잘나서 이런 대학에 왔냐.’라는. 스스로도 괴롭히는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모두가 지금까지 옳지 않은 방향을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등에 검은 소를 이고 다니는 대학생들은 어떤 심정으로 성장을 해야만 할까요.

오늘은 소를 위한 글을 바치며, 궐련탑을 쌓아야겠습니다.

귓속말로 하는 이야기들이, 주류가 되고. 앞으로도 검은 소는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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