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by 나언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이 자연의 이치고, 24절기와 사계절이 또한 무릇 자연의 이치인 것을, 더울 때는 시원한 옷을 입고 추울 때는 따뜻한 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순응하지 않는 ‘얼죽아’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컨대, 추우면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란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기현상에서 나 또한 쉽게 벗어나지 못함은, 이내 답답한 내 가슴이 있기 때문이란다. 밖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동장군이 나타나 우리를 꾸짖는대도 무엇으로도 풀리지 않는 갈증이 속을 덥히고 데우기 때문이란다. 화병, 울화통. 가슴 속에는 천불이 나는 사람들에겐 몸의 추위보다 가슴 속의 온도가 너무도 뜨겁기 때문이란다.

과연,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언제부터 마셨는가. 어린 시절, 나는 어린 소녀의 입맛으로 카페모카를 선호했다. 달달하고 따뜻한 카페모카는 참으로 쓴 맛이 나는 여타 커피보다 나의 혓바닥님께서 선호하시는 음료였다. 어느새 제일 값싼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참고로 아메리카노는 카페모카와 같은 음료에 비해 살이 덜 찐다고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탈리아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미워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쩌면 커피라는 존재를 좋아하기보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이번 주에 카페에 들른 나는 “요즘 밖이 너무 추워요.”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라고 이상한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세상살이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물도 아닌 것이, 커피도 아닌 요상한 것에 얼음까지 동동 떠있다. 차가운 테이크 아웃 커피 잔을 손에 들며 추위에 괴로워한다. 한 손이 너무 추우면, 다른 손으로 바꿔서 한 손은 주머니에 넣는다. 아, 애써 차가워지려함은 본디 내 삶이 너무도 뜨겁기 때문이리라.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것에 끝이 없다. 그 탁월한 산미의 쓴 맛은 입술을 빨대로 다가가는 첫 장면에서 나타나는데, 자연스럽게 갈증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입안이 바싹 마르기 때문이다. 쓴 맛은 때로 습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때론 안구에 찬 습기까지도.

이열치열이 있다면, 이냉치냉도 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고진감래, 흥진비래와 같아서 천천히 얼음이 녹아가며 옅어지는 밸런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처음의 쓰디쓴 눈물은 어느새 중화되어, 점점 신체에 적합한 물에 가까워지는 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속을 내려준다. 가슴 깊이 쌓인 화병을 내려다 준다.

눈물은 짜고, 커피는 쓰다. 속은 뜨겁고, 밖은 춥다. 때로는 어깨를 펴고, 차가운 바람이 내 깊은 속까지 시원하게 했으면 좋겠다만, 그러지 못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혹여, 잠깐은 이 화병이 수그러들 것만 같아서.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카페인의 기분 좋음을 만끽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년들이다. 값이 싸고, 속에 지닌 울화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청년들의 음료다. 어릴 때는 쓴 것을 먹지 못하다가, 자연스럽게 너도 나도 마신다. 삶을 움직이기 위해서 커피를 연료로 사용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오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는 한국인의 정서인 ‘한恨’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내 답답한 내 가슴, 어쩔 줄을 모르고. 잃어버린 가슴 속의 어떤 무언가는 환상통처럼 매번 덥다며 울부짖는다. 자연스럽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가렵지만 긁지 못하는 내 가슴 속의 울분을 달래보리라. 아, 차갑다. 아주 차갑다. 시원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눈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