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세 노교장의 낯선 세상 생존기 -
나는 종종 점심을 먹으러 친구들과 밖으로 나간다. 은퇴한 뒤로는 그런 시간들이 정오의 햇살처럼 부드럽게 흘렀다. 때로는 그 느슨함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서두를 이유도, 말을 채울 필요도 없었다.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그렇다고 늘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나는 혼자 밥을 먹는 일에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있었다. 교사들과의 상담과 아이들의 소란으로 언제나 웅성거리던 교장실. 그곳을 뒤로한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이제 나의 시간은 누구의 재촉도 없었다. 그저 나만의 리듬으로 흐르고 있었다. 입속에서 사그라지는 밥알의 감촉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
숟가락이 그릇에 닿을 때 울리는 낮은 금속음을 귀로 따라가는 일. 이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는 지극히 사적인 의식이었다. 씹는 소리와 작은 부스럭거림이 식탁의 시간을 채웠다.
식탁 위의 시간은 번잡함 없이 천천히 쌓여 갔다. 교장 시절의 나는 늘 시간에 쫓기듯 살았다. 1,500여 명 아이들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진 무게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8시만 되면 교문의 수문장이 되어 몰려오는 아이들을 맞이했다. 녀석들의 흐트러진 복장을 다듬어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던 시절, 마치 전군을 사열하는 장군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차올랐다. 그때의 나는 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용한 식탁의 주인이 되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상담을 요구하거나 시간이 바쁘다며 빨리 처리해 달라는 결재 서류를 가져오지 않는다.
이 정적은 처음에는 지독한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적과 나란히 앉아 있는 법을 배웠다. 혼자 먹는 밥이 처량함이 아니라 자유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날도 나는 그런 자유를 만끽하며 집을 나섰다. 낡았지만 정갈하게 닦인 구두를 신고 계단을 내려갔다. 무릎에서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 익숙한 골목길. 오래전부터 드나들던 규모가 작지 않은 분식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학생 시절의 추억이 서린, 이 동네의 오래된 보석 같은 곳이었다.
그곳은 한때 할머니가 직접 칼국수를 만들고 김밥을 말아 주던 곳이었다. 유리문에 붙은 손글씨 간판마저 정겨웠다. 나의 허기를 따스한 인정으로 채워주던 공간이었다.
문만 열고 들어가면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던 곳.
“어서 와요, 교장 선생님!”
주인장의 푸근한 목소리가 늘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주문은 주인장의 인자한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는 것으로 충분했다. 계산은 두 눈을 지그시 마주치는 무언의 교감으로 이루어졌다.
비좁은 테이블에 끼어 앉아 먹던 칼국수 한 그릇. 그 속에는 단순한 밀가루면 이상의 온기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 마주한 가게의 풍경은 낯설기만 했다.
유리문에 삐딱하게 붙어 있는 활자가 내 발을 잡았다.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해주세요.”
그 단어들이 돌처럼 무겁게 내 가슴을 내리눌렀다. 나는 한동안 그 차가운 활자들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마치 거대한 장벽 앞에 선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대했던 훈훈한 열기는 없었다. 낯익은 주인의 미소 대신, 입구 한편에 검은 요괴가 서 있었다. 빛을 내뿜는 거대한 화면이 나를 무심하게 응시했다.
섬뜩할 정도로 선명한 빛을 뿜어내는 액정 화면. 그 위로 떡볶이와 김밥 사진들이 쨍하게 쏟아져 나왔다. 사람의 온기 대신 기계의 금속성 광채가 공간을 압도했다.
나는 잠시 주춤하며 주방 쪽을 살폈다. 젊은 청년 하나가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들어온 것조차 모르는 듯했다.
예전의 할머니였다면 벌써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왔을 것이다.
“교장 선생님, 오늘도 늘 먹던 걸로 드릴까?”
그 한마디가 그리워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은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기계 앞에 당당히 섰다. 과거 운동장 조회대 위에서 아이들을 굽어살피던 자세였다. 월요일 아침, 마이크 앞에 서면 전교생이 침묵하던 그 위엄.
그 위엄을 등 뒤에 업고 화면을 마주했다. 그러나 차가운 화면은 나의 경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계는 묻지 않았다.
그는 무기력하고 평평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마치 상대를 시험하듯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드시고 가실 건가요? 포장하실 건가요?”
그의 말투는 언제나 같았다. 감정도, 억양도 없는 단정한 질문. 선택지를 건네는 듯했지만, 그 안에는 대답 외의 여지는 없었다.
지극히 단순한 물음이었지만, 나에게는 폭풍과도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입만 열면 해결될 문제였다. 이제는 눈과 입 대신 손가락 끝의 정확한 조작이 필요했다.
수십 년간 학교의 복잡한 행정을 처리하던 나의 두뇌. 논리적으로 세상을 분석하던 나의 지성은 마비되었다. 이 사소한 기계 앞에서 나는 무력한 아이가 되었다.
나는 천천히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화면을 눌렀다. 액정의 표면은 상상 이상으로 매끄러웠다. 실내 온도와 상관없이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감촉이었다.
찰나의 머뭇거림조차 그는 허용하지 않았다. 나의 미숙한 미동을 놓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대화를 다음 단계로 밀어붙였다. 눈앞에 수많은 메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칼국수 한 그릇, 김밥 한 줄을 찾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화면 속의 글자들은 작고 촘촘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글자들이 자꾸만 번져 보였다.
나는 침을 꿀깍 삼키며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기계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화면이 초기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허허, 이놈 봐라. 나를 시험하는 게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기계는 대답 대신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드시고 가실 건가요?”
나는 다시 한번 손가락에 힘을 주어 화면을 눌렀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익숙한 메뉴들이 다시 나타났다. 칼국수, 김밥, 떡볶이, 라면. 정겨운 음식들이었지만, 그 아래 붙은 옵션들은 암호였다.
‘추가’, ‘변경’, ‘옵션 선택’
분명 아는 단어들인데 의미가 머릿속에서 조립되지 않았다. 글자들이 혼돈의 미로를 만들며 뇌를 어지럽혔다. 김밥 사진을 겨우 찾아 누르자, 더 큰 난관이 닥쳤다.
등 뒤에서 미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 예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천근만근의 무게가 되었다.
“옵션을 선택해 주세요.”
그의 문장은 늘 명령형이었다. 설명은 없고, 기다림도 없었다. 응답만을 요구하는 말투였다.
화면은 명령형 어조로 나를 사정없이 재촉했다. 단무지 추가, 밥 양 조절, 오이 제외, 햄 추가. 나는 그저 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과 김밥 한 줄이 먹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기계는 김밥의 해부학적 구조를 따지고 들었다. 나의 욕구를 데이터로 증명하라고 강요하는 듯했다. 아무것도 고르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화면은 요지부동이었고, 뒤에서는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 한숨은 채찍질보다 아프게 나의 자존심을 때렸다. 나는 쫓기듯 손가락을 휘둘러 아무 버튼이나 찍었다.
가격이 순식간에 만 원을 훌쩍 넘겨버렸다. 터무니없이 높아진 숫자가 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취소’라는 단어를 찾아 화면 구석구석을 훑었다.
비슷비슷한 버튼들 사이에서 나의 노안은 길을 잃았다. 식은땀이 콧등을 타고 흘러내려 안경알에 맺혔다. 세상이 나를 비웃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기다리던 젊은이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그는 예의를 갖춘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절차의 일부처럼 들렸다. 그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오직 화면만을 향해 몸을 기울였고, 손가락은 아무 말 없이 화면 위를 빠르게 훑었다.
화면은 그의 미세한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복종했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카드는 여기 넣으시고요.”
나는 그저 멍하니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결제가 끝나자 바스락거리는 얇은 영수증이 나왔다. 내 손끝에 닿은 그 종이는 너무나 가벼웠다.
한때 교장실 책상 위에서 수백 장의 서류를 넘기던 손. 만년필로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던 나의 두툼한 손끝·이제 그 손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종이 한 장만 남았다.
내 손은 '속도'가 아니라 '무게'를 다루는 도구였다. 하지만 이 하얀 종잇조각은 나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너의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고, 너의 방식은 틀렸다고.
음식은 놀랍도록 빨리 나왔다. 기다림의 미학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인 모양이었다. 그 맛은 다행히 예전 할머니의 손맛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갓 나온 따끈한 칼국수와 김밥 한 줄 앞에서 나는 망설였다. 첫 젓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이토록 힘들 줄이야. 입안에 침이 고이기는커녕 목구멍이 바싹 말라붙었다.
기계는 오차 없는 정확성으로 음식을 내놓았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단지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과거에는 주문을 잘못해도 괜찮았다.
“아이고, 미안해. 김밥에 오이 좀 빼달라는 걸 깜빡했네.”
“아유, 교장 선생님도 참. 금방 다시 말아 드릴게!”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것이 사람 사는 맛이었다. 소통의 오류조차 인간적인 교류의 소중한 일부였다. 그러나 이제 화면은 나에게 두 번 다시 묻지 않는다.
그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기다려줄 생각도 없는 상대일 뿐이었다. 주변 테이블에서는 젊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대화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소음 같았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다른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도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사람이었다. 결국 주문하지 못한 채 직원의 도움을 겨우 받은 듯했다. 그는 종이컵에 담긴 맹물만 들이키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요즘은 밥 먹는 것도 참 고역이네요, 그렇죠?”
그가 먼저 나에게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그러게요. 예전엔 말 한마디면 다 통했는데 말입니다.”
“나는 칼국수 하나 시키려다 포기할 뻔했습니다. 기계가 무섭더군요.”
“대답을 잘못하면 기계가 화를 내듯 처음으로 돌아가더군요.”
우리는 이제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서로의 심장을 읽을 수 있었다. 나의 망설임은 데이터로 기록될 가치가 없는 노이즈였다.
이 디지털의 바다에서 우리 같은 노인들은 유령이었다. 0과 1 사이에서 길을 잃은 가련한 존재들. 나는 목이 메어 김밥 한 조각을 간신히 삼켰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열고 나왔다. 바깥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차갑게 뺨을 스쳤다. 나는 멈춰 서서 주머니 속 영수증을 다시 꺼냈다.
날짜와 시간, 금액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 정량화된 숫자들 사이에는 나의 고뇌가 없었다. 내가 겪은 황망함이나 숨 가쁜 망설임의 흔적도 없었다.
기계는 필요한 것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인간의 고심과 체취는 처음부터 계산에 없었다.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자 인파가 몰려나왔다.
사람들은 거대한 물결처럼 한꺼번에 움직였다. 나는 그들보다 한 박자 늦게, 천천히 발을 떼었다. 내 몸의 반응 속도가 세상보다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아까 그 화면의 단어들을 곱씹었다.
‘옵션, 다음 단계, 선택 완료.’
나는 김밥 한 줄이 아니라 시대를 주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부품이었다. 지하철역 계단 앞에 서서 잠시 멈췄다.
엘리베이터 옆에는 ‘무인 운행’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굳이 계단을 택했다. 가파른 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갔다.
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박자를 지키고 싶었다. 삶의 단계를 내 발로 직접 확인하며 내려가고 싶었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기분은 외롭지 않았다.
개찰구 앞에 서서 카드를 기계에 갖다 댔다.
‘삑-’
짧고 명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평생 아이들에게 규칙을 지키라고 가르쳐온 나였다. 정작 나는 이 작은 기계음 하나에 안도하고 있었다.
플랫폼 전광판에는 도착 시간이 초 단위로 줄어들었다. 기다림마저 정밀하게 계산되는 삭막한 세상. 맞은편 광고화면 속 젊은이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들은 숨이 차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화면은 그들의 젊음과 속도를 찬양하고 있었다. 열차가 터널 속에서 바람을 가르며 들어왔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어둠을 보았다. 오늘 하루 나를 휩쓸고 간 소외감을 가만히 정리했다.
나는 다음 역 이름을 확인하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도헌아, 고생했다.”
그것은 예전 제자들에게 건네던 가장 따뜻한 훈화였다. 동시에 세상의 속도를 겨우 따라온 나에게 주는 훈장이었다. 열차는 나를 태우고 다시 소리 없이 어둠 속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