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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May 07. 2022

네모 속 결정적 순간들

자랑 좀 하고싶어 올립니다, 인스타그램

내 카메라의 사진 비율은 1:1로 설정되어 있다.

흔한 직사각형의 비율이 아닌 이유는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올리기 적합한 비율이 1:1, 정사각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네모창을 통해 내 일상의 결정적 순간들을 모두에게 공유한다. 남들의 순간들도 네모창을 통해 훔쳐다 본다. 단정해 보이는 네모 속의 일상들은 사실 저마다 시끄럽다. 돋보이고 싶어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필자의 피드도 자랑거리로 넘친다. 계정은 책 표지와 딸 사진으로 메워져 있다.  #독서스타그램 과 #애스타그램의 콜라보라고나 할까. '스타그램'는 자랑으로 치환해도 무방하겠다. 단 몇 번만 스크롤해봐도  "이렇게 귀여운 딸을 키운다!"와 "애를 키우면서도 책도 읽는다!"라고 자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로필에는 브런치 주소와 함께, 책읽기 글쓰기를 좋아하는 워킹맘이라고 기재해 두었다. 자, 종합해 보자면, "나는 아기를 키우며 일을 하는 바쁜 워킹맘이지만, 그 와중에 이렇게 책을 많이 읽고 심지어 글까지 쓴다."가 되겠다.


 필자 피드의 압도적인 지분율을 자랑하는 것은 북리뷰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책 표지를 찍고, 간단하게 리뷰를 쓴 후 인스타에 업로드를 한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는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기록해서 기억하자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잰체하기 위해' 업로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북리뷰를 끄적이고, 마음에 들어온 문장들을 정리하고, 업로드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독서경험이 더 만족스럽고 풍성해짐을 느끼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좋고, 북리뷰를 피드에 올리고 그 감흥(댓글이나 좋아요, 북스타그래머들의 팔로우)을 즐기는 것은 더 재밌기 때문에. 그러므로 북리뷰를 피드에 올리는 것 자체가 독서생활의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난 그렇게 북스타그래머가 되어가고 있다.


MZ세대들은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데 익숙하다. 개인의 취향과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나의 것들을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나만의 포트폴리오 혹은 데이터베이스를 쌓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인스타를 포함한 SNS를 하는 것에는 분명히 순기능이 있다. 기록의 매체이기도 하고, 동기부여의 장이기도 하고 트렌디한 정보를 탐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조심해야 할 점들도 있다.


먼저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늘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어느 고깃집 사장님이 그런 말을 남기셨다고 한다. 가장 맛있는 고기는 카메라 먹는다라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ㅡ한강 다리에 걸린 노을이나, 가장 맛있는 온도의 커피나, 가장 먹기 좋게 익은 고기, 내 아이의 가장 빛나는 웃음ㅡ이 모두 인스타그래머블한 한 장의 찰나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을 눈으로 보고, 코로 들이마시고, 손으로 만지고, 혀로 맛보며 온몸으로 기억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시태그의 굴레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는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에 내가 검색해본 해시태그들을 살펴보니, #태슬컷 #태슬펌 #단발 등이 있었다. 지겨워진 헤어스타일을 바꾸고자 해서다. 이 검색 행위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단발태슬컷'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미 '태슬컷'을 하고 싶다고 답을 정해놓고 검색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 어울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선정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해시태그는 정보검색의 주요한 장치이지만 동시에 원하는 정보만 포집하는 덫이기도 하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조심, 또 조심해도 부족하지 않다.


또 가끔은 이런 계정을 만난다. 소위 갓생을 사는 사기캐들의 계정. 완벽한 자기 관리는 물론이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직업에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춘 인플루언서들. 그들의 피드를 살펴보다 보면 아등바등 사는 내 일상이 비루하게 느껴지고야 만다. 이런 유의 비교는 SNS 사용의 최악의 단점이 아닐까. 이때, 남들의 하이라이트씬을 너의 비하인드씬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겠다. 완벽해 보이는 그들에게도 비하인드씬은 있을 터. 또한 피드에 보이는 하이라이트씬도 약간은 보정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네모창의 세상이다.

누군가는 집착하고, 누군가는 교묘히 이용하며, 누군가는 무관심할 세상.

그저 일개의 인스타 유저로서 나의 슬기롭고 유익한 인스타각을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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