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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May 09. 2022

미는 인간과 밀리는 인간

1인 세신샵에 다녀왔다.

이 세상에는 1) 때 미는 인간과 2) 때 밀지 않는 인간이 있다. 나는 전자의 인간으로 때를 미는 쾌감을 사랑한다. 피부과학적 관점에서 많은 염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TMI로 지극히 개인적인 때밀이 루틴을 소개한다. 더럽게 느껴지거나 궁금하지 않다면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 주시길. 우선 뜨끈한 고온탕에서 물떡꼬치처럼 몸을 퉁퉁 불리는 게 먼저다. 충분한 불리기를 통해 적은 힘으로 최대의 때를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 불려진 피부는 때수건이 스치기만 해도 때를 후두두둑 뱉어낸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목욕법을 갈구하는 자로서, 때밀이 타월의 거친면으로 작업하는 편이다. 때밀이 타월 끝에 마중물 용도의 비누를 조금 묻힌 뒤 본격적으로 민다. 중간중간 밀어낸 피부와 밀어내지 않은 피부를 비교해서 만져보면서 때밀이의 퀄리티를 확인하고 흡족해한다. 온몸 구석구석을 고도의 집중력으로 밀어낸다. 상기 일련의 공정이 끝나고 나면 피부는 한결 부드럽고 촉촉해진다. 과학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덩달아 마음도 상쾌해진다. 마지막으로 마른 목구멍에 달콤한 단지 바나나우유를 들이부으면 완벽한 때밀이가 완성된다.


목욕탕을 못 간 지 만 2년이 지났다. 때 미는 인간에게는 지난하고도 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가 무서워서 못 갔고, 2021년에는 임신과 출산으로 갈 수 없었으며, 2022년에는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때를 밀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1) 때 미는 인간과 2) 때 밀지 않는 인간 그리고 3) 때를 밀 수 없는 인간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세상에는 때를 밀어주는 인간도 있다는 사실에 아주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쌓아온 검색력을 총동원해 1인 세신샵이라는 신(新) 목욕 문화를 접하게 된다. 여성전용 1인 목욕탕을 표방하는 이 새로운 모델은 나의 니즈에 딱 맞아떨어졌다. 시간당 최대 2명, 100% 예약제라 코로나로부터 조금은 안심할 수 있는 데다, 너덜너덜해진 손목으로는 불가능한 전문적인 때밀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체 없이 예약 버튼을 눌렀다. 햇수로 3년간 쌓아온 묵은 각질을 털어버릴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신사와 손님을 위한 단 두 개의 옷장만 준비되어 있는 탈의실을 지나 목욕탕으로 입장했다. 입욕통, 베드, 장비들(?)이 놓인 선반, 샤워기가 갖추어져 있었다. 한국의 매운맛 목욕문화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이 공간을 보았다면 불법 수술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입욕통에서 뜨끈한 물로 몸을 불린 후 갈매기 모양 눈썹 문신이 인상적인 세신사에게 몸을 맡겼다. 벌거벗은 채 베드 위에 누워있는 나와 브라와 팬티를 입은 중년의 세신사가 리드미컬하게 때를 밀고 밀린다. 당시에는 이 극강의 시원함을 몇 문단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비루한 글솜씨로는 시원함 그 이상의 단어를 찾지를 못하겠다. 어쨌든 50분간의 때밀이 극락 체험은 머리 감기에서 화룡정점을 찍는다. 관리사는 현란한 손기술로 두피와 어깨를 마구 풀어준다. 목욕을 마친 나는 마치 오랫동안 냉동한 뒤 해동된 떡 같았다. 그날 이후 때 미는 인간에서 때 밀리는 인간으로 변화했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목욕 경험이었다.


87년생인 필자의 목욕 경험 연대기는 목욕 인프라의 변화와 함께 다채롭게 변해왔다. 온탕 냉탕뿐이던 단출한 대중목욕탕은 매주 다른 입욕제가 풀어져 있는 이벤트탕과  버튼을 누르면 물기둥이 허리를 마사지해주는 탕을 도입해 변주했다. 또 언제부터인가 찜질방이 대중화되어 모두가 양머리 수건을 뒤집어쓰고 불가마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황금기를 지나 코로나가 목욕업계를 강타하며 목욕탕은 잠시 기피시설로 인식되기도 했다. 자, 엔데믹을 맞이하여 목욕 인프라에 어떤 변화가 일지 궁금해진다. 우선적으로 목욕 인프라 목록에 1인 세신샵이 추가될 '때'라고 생각한다.


노랑이와 초록이(출처:제타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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