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길통증지수'라는 연구 결과라고 하니 꽤나 객관적인 수치로 보였다. 하지만 이내 드는 의문. 개인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일까? 1위부터 8위에 해당하는 모든 고통을 한 사람이 겪은 후 점수를 매겼을 리 없다. 설령 한 사람이 모두 겪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점수인 데다, 1명의 데이터로는 객관화 자체가 어렵다. 그럼, 이 자료.. 믿어도 되는 걸까? 일렁이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구글링을 시작했다. 순위 결과지는 널려 있었지만 자세한 연구 출처와 과정은 좀 더 세밀히 살펴봐야만 했다. 나무위키의 '고통' 카테고리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역시나, 이는 설문조사(Questionnaire)를 통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통증의 정도를 수치화한 것으로 객관적인 지표라 보기 어렵단다.
산통을 시작할 때, 왼쪽 손목에 멍이 든 것 같은 미세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겨우 4킬로가 갓 넘은 아기를 안아 올리는 데에도 손목이 시큰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통증을 가볍게 무시했다.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그저 요령이 없어 아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엄마가 된 친구들도 하나같이 나도 그렇다! 다 그런 거다!라고 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밥그릇을 놓쳤다. 손목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기 시작한 것. 의사는 드퀘르뱅(손목건초염)을 진단 한 뒤, 육아를 하는 엄마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질병이라고 말해주었다. 공신력 있는 의사의 '흔하다'는 말에 다시 경각심을 잃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는 반깁스를 하고 산다. 집중적으로 치료받아야 할 시기에 다들 이 정도는 아프니 참아보자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에 손목의 인대는 탄력을 잃고 찢어져 버렸다. 그렇게 TFCC(삼각섬유연골복합체손상) 환자로 발전하게 되었다. 옴짝달싹 못하게 묶인 왼손을 바라보며 왜 반깁스를 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람마다 통증에 대한 역치나 민감도는 물론이고 근육의 질김과 유연성도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삐걱대는 손목으로 허벅지를 치며 깨닫는다. 왜 그들의 통증과 나의 통증을 동일시하였는지 후회스럽다. 한 몸처럼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면서.
"괜찮아, 다 그런 거야."라는 말은 언뜻 나를 힘듦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며 건네는 다정한 위로로 들린다. 하지만 고통이라는 것은 맥길통증지수처럼 절대적 순위를 매길 수가 없기에 어쩌면 참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특히 서로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끊어진 손목으로부터 배운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나의 고통도 타인의 기준으로 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