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날밤,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명히 착한 소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결여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조바심과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명분삼은) 소비욕구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찌질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나의 진짜 진짜 속내는 이런 것이었다.
친환경을 실천하는 사람 깨인 사람처럼 보/여/지/고 싶다.
방향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 며칠 내 마음속에 일어난 일련의 풍파를 '에코-쇼잉'으로 스스로 정의하고 경계하기로 했다. 낮에 샀던 것들은 사실은 에코쇼잉을 위한 소품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때문에 원점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었다. 제로웨이스트 물품 리뷰나 제로웨이스터 브이로그 시청을 멈추었다. 대신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다큐멘터리 몇 편을 시청했다. 이후, 제로웨이스터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었지만 실천 양식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져있었다.
유리빨대, 사이잘삼 수세미, 대나무 칫솔, 다회용 텀블러, 손수건으로 시작하는 실천들도, 물론 좋다. 하지만 우선은 지금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을 야무지게 끝까지 사용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로웨이스트를 마음먹었다고 해도 당장 내일부터 요시땅! 이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현대사회에서 플라스틱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할 수 있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산 플라스틱 제품들은 그것이 생산된 순간부터 플라스틱 생애주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책임지고 끝까지 사용하고 덜 해로운 방식으로 폐기해야만, 한다.
제로웨이스트는 단숨에 뒤엎을 수 있는 상상 속 세계관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따라서 빠르게, 혁신적으로, 얼른 변화시킬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누군가 삶은 빨리 감기가 없이 정속으로 플레이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일상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바꿔나가게 자연스러운 방법일 수밖 없다는 것을 깨닫는 밤이다.
에코-쇼잉 멈춰!!!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고 하며 이는 기업에 국한된 개념입니다. 개인에게 적용할 용어로 에코쇼잉이란 단어를 만들어 내어 실은 것이므로 공식적인 용어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