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호선 세입자다. 서울에 처음으로 정착하는 1인 가구 세대주인 나는 집값에 소스라치게 놀란 후 2호선 어드메쯤 적당히 자리 잡았다. 교대역에서 환승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엄마엄마! 와 여기 불꽃축제하는 갑다! 와이렇노 엉망진창 와장창이다! 진짜 파이다!*
당황스러움에 급히 엄마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첫 출근 후 퇴근길, 나는 말로만 듣던 '지옥철'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오후 6시 교대역에는 구멍구멍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부산 지하철에서는 '앉을자리'를 찾아야 했는데 서울에서는 끼어 '설 자리'를 찾아야 했다. 광안리 불꽃 축제 때나 벌어지는지하철 난리법석이 서울에서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셈이었다. 매일이 축제인 걸로 여기면 좀 편하려나.
겨우 겨우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었다.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땀이 삐질삐질 날 지경이었다. 두 세 코스쯤 갔을 때였나. 사당역에서 나는 하마터면 인파에 휩쓸려 강제 하차당할 뻔한다. 첫 출근이라고 무리해서 꿰어 신은 높은 굽의 구두가 말썽이었다. 최대한의 근력과 균형감을 끌어모아 내 몸은밀려나지 않았는데,나의 숄더백이 그만 맥없이 딸려 나갔다. 좌절감이란 게 형태가 있다면 이런 꼴일까 생각하며 나는 다음날부터는 플랫슈즈를 신고 백팩을 메기로 결심했다.
너덜너덜해진 채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뻗었다. 나도 몰래 고개가 절레절레 가로저어졌다.
와..도랏네 진짜..어째 사노 서울에서..
나의 서울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꼴랑 몇 개월이지만 그사이 나는 애법*서울 사람처럼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물론 더 이상 당황하지 않을 뿐, 그 고단함은 여전하지만. 너무 붐빌 때는 지하철 몇 대쯤은 여유 있게 보내주기도 한다. 어느 시간에미세하게나마 덜 붐비는 지를 알아보고자 했으나, 그건 거대한 난수표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쨌건 나는 서울 전역에모세혈관처럼 뻗어있는 이 지하철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있는 중이다.오늘도 가볍고 경쾌하게 태깅한다, 삑-
Note 1) 파이다 : 별로다/ 예) 금마 그거 파이드라.
Note 2) 애법: 제법 / 예) 애법 서울말 좀 하네?(화자에 따라 애복으로도 변형되어 사용. '애'에 강세를 주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