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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ul 07. 2020

홈서윗홈 인 서울

나의 작고 소중한 보금자리


아주 어릴 때 내가 꿈꾸던 집은 색깔이나 도형 같은 감각으로 남아있다. 흰 도화지에 서툰 솜씨로 북북 그리곤 했던 어떤 집이었는데, 빨간색 박공지붕에 굴뚝에는 꼭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네모난 창에는 격자무늬 창틀이 있었다.  그 앞에는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씩은 심어져 있었고 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고 행복한 얼굴로 서있는 그런 거. 건축학을 공부한 내가 학생 때 꿈꾸던 집은 약간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긴 했지만 여전히 이상적이고 감각적이었다. 작은 중정을 둘러싼 네모난 집. 마루에 누워서 중정의 네모난 하늘을 바라보는 걸 상상하면서.


안타깝게도 어른이 되어 만난 현실의 집들은, 특히 서울에서의 집이란, 판이하게 달랐다. 모든 게 차가운 숫자로 점철되어 있었다. 평형부터 시작해서 공시지가, 매매가, 전세가, 월세, 관리비까지 어느 하나 숫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입사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어느 겨울, 내 집을 구하기 위한 그 숫자와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되도록 회사랑 가깝고, 안전해야 하고, 그러니까 경비원이 상주하면 더 좋고, 깨끗해야 하고, 넓고, 해도 잘 들어야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집은 내 예산으론 구할 수 없었다.


울산에서 전 직장을 다니는 내내 기숙사에 살았다. 기숙사는 회사랑 가깝고, 안전했고, 나름 깨끗했고, 넓었으며, 해도 잘 들었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월 5만 원이었다. 월 5만 원에 관리자가 있는 기숙사에서 출퇴근을 하고, 잠을 자고, 씻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차대한 복지였는지 서울에서 집을 구해보고서 깨달았다.


은행의 이자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집주인들은 되도록 전세로 내놓지 않았고, 고보증금의 반전세마저 거부하는 바람에 나의 선택지는 좁아져갔다. 입사까지의 시간이 촉박했던 터라 마음이 급했다. 여차저차 몇 가지 조건을 포기해가며 차선의 선택지로 계약하게 된다. 흔해빠진 서울의 1인 가구 월세입자가 된 나는 1년 치 기숙사비와 맞먹는 금액을 첫 달 월세와 중개료로 냈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보다 먼저 들이닥친 12개월 치 고단함같은 거였다.


어쨌든 - 지하철에서 조금 멀지만, 아주 신축은 아니지만, 나름 나의 작고 소박한 집이 생겼다! 

나의 집에서의 첫날, 앞으로 이 집에서 좋은 일만 가득하길 잠시 기도하며 잠들었던 것 같다.


누구나 꿈꿔봄직한 홈서윗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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