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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ul 09. 2020

아주 조금 낡은 막내

낡고 녹슬었지만,

나는 7년 차 막내다.


어느 조직에 가도 나이로도, 직급으로도 막내였다. 내가 속해있는 분야는 소위 '경험 산업'으로 불리는데, 여러 프로젝트를 해본 연륜과 노하우 (혹은 짬바)가 필요한 분야. 그런 사유로 신입보다는 과차장급 이상의 경력직으로 충원하기 때문에 나의 막내 생활은 계속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가 삼십 대 중반이니 조금은 낡은 막내라 하겠다.


조직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막내는 본 업무와 더불어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대체로 각종 잡무지만. 팀원 부재 시 전화를 당겨 받고 메모 남기기, 점심식사 메뉴 조사와 예약하기, 회식 어레인지 하기, 휴가 여부 확인하기, 모닝커피 주문받기, 사무용품과 비품 챙기기 등등.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막내일은 회사에서 주는 선물을 명단대로 나눠주기이다. 프로젝트 완료를 기념할 때나 명절에 선물이 나오기도 하고, 직원들의 교양 함양을 위한 도서가 배포되기도 하고, 고3 자녀를 둔 직원을 위해 수능 대박 기원 세트를 나눠주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대단히 귀찮은 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일이 참 좋은데, 이유는 되게 사소하다. 바로 동료들이 고맙다고 말해서다. 물론 내가 준비해서 주는 건 아니지만(...) 업무를 할 때 영혼 없이 내뱉는 '감사합니다' 와는 조금 결이 다른 고맙다는 인사에 괜히 기분이 달뜬다. 이런 걸 보면 나는 막내가 체질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팀에 따라 막내를 대하는 태도도 천지차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감사하게도) 막내온탑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나는 전 직장에서 존경하는 이 부장님과 함께 일했던 그때를 막내온탑, 나의 막내 황금기로 기억할 것이다. 이 부장님은 '모든 것을 재언님의 뜻대로'라는 신조 아래 막내에게 절대적인 행정 권한을 주셨다. 특히나 다른 팀에서 부러워했던 건 바로 법카의 실세가 막내였다는 점이다. 회사는 팀장들에게 매월 팀친목비 명목으로 법카를 지급했는데, 대부분의 팀장들은 그 카드를 딱 회식비로만 쓰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월급 플러스알파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 부장님은 해당 용도로 모두 소진하는 쪽이었다. 나에게 잔액을 늘 알려주시고 다 쓰기를 권장하셨다. 그리고 월말에 잔액이 0원이 되면 심지어 잘했다며 칭찬까지(?)해주셨다.


물론 내 일이 바쁠 때, 보태기로 더해지는 막내만의 R&R 이 가끔 짜증스럽거나 귀찮은 경우도 왕왕 있다. 각자 해도 될 일 같은데, 아 왜 이런 것 까지- 싶을 때도 생기지만 이왕지사 즐거운 마음으로 슬기롭게 막내 생활을 하기로 한다. 난 젊으니까!


오늘도 조금 낡았지만, 나름 후레시한 에너지를 품은 막내가 출근을 한다 :)

이제는 막내 티가 제발 좀 났으면..^^.. 출처 반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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