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변기에 하나같이 변기 뚜껑이 없었다. 변기 뚜껑을 닫지 않고 물을 내리는 게 무척이나 찜찜했었다. 그렇다고 그 이유를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지만. 변기 뚜껑이 없는 변기는 마치 유명한 개념미술가의 오브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 화장실 거울이 깨져 수리 신청을 하다가 정 대리가 말했다.
“사람들 화장실에서 몰래몰래 쉰다고 변기 뚜껑은 그날로 다 뜯어버리더니 화장실 거울 깨진 건 몇 번을 말해야 신청을 받아주네!"
"엥? 변기 뚜껑이 그래서 없는 거였어요?"
"몰랐어? 사람들이 업무 시간에 화장실 가서 변기 뚜껑 위에서 앉아서 쉬는 것 같다고 사측에서 전사의 변기 뚜껑 다 뜯어버렸잖아."
"헐."
오전, 오후 잠깐의 휴게시간도 비근 처리를 하면서 변기 뚜껑까지 일일이 뜯어주시는 정성까지 보여준 탓에 그만 가탄하였다. 조금 더 있다간 화장실도 없앨 기세다 싶었다. 동시에 사측의 탁상행정을 조금 비웃어 주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구성원이 변기 뚜껑이 없어도 앉아서 잘만 쉬기 때문이었다.
가로 세로 1m 남짓의 공중 화장실은 하루 종일 다종의 인간과 부대껴야 하는 회사원들에게 샘 같은 존재다.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그 작은 공간이 주는 오롯한 안정감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곳에서 잠시나마 카톡도 하고, 주식동향도 살피고, 웹툰도 읽고, 인스타그램도 훑어보는, 혼자만의 망중한을 즐기는 곳. 회사원에게 화장실은 그런 곳인 것이다.
마르셀 뒤샹 <샘>,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화장실 휴식-2
이직한 회사의 인테리어는 모던했다. 화이트 톤의 잘 정돈된 실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화장실이었다. 오피스 공간은 깨끗하게 리모델링을 했지만 화장실은 낡은 건물 원래의 것 그대로였다.
여자 화장실의 마지막 칸은 대개 청소 도구함으로 쓰인다. 막대걸레 등을 보관해 두거나 화장지와 같은 소모품을 쌓아두는 용도랄까. 한 번은 그 마지막 칸 문이 열린 채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이 삐죽이 나와 있어 식겁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청소 도구들과 함께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고, 유니폼도 걸려 있었다. 이를테면 미화원 이모님들이 쉬는 장소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