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센티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큰 키에 다소 무서워 보이는 첫인상의 이 부장님은, 새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그리고 내 예상과 다르게(?) 친절하고 좋은 분이셨다. 영업팀 출신답게 친화력도 남달랐고, 특히 '에이~잘 좀 부탁드립니데이~ ' 유의 능글맞음을 겸비하셔서 곤란한 업무들을 든든하게 처리해 주시곤 했다.
2년을 넘게 이 부장님과 함께 일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나에게 절대 절대 반말을 하지 않으신다는 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에게 존대를 하셨다. 돌이켜 보면 이전 대부분의 팀 내 상사들은 금방 말을 놨다. 물론 '재언 씨', '이 대리' 등의 호칭을 붙여주시긴 했지만 말단 직급의 나에게 굳이 존대를 하지는 않으셨고, 나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문득 궁금해진 나는 회식 자리에서 술기운을 빌어 이 부장님께 여쭤봤다. 같이 일한 지 1년이 훨씬 넘었는데 계속 존댓말을 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이 부장님은 겸연쩍게 웃어 보이시고는 '아 이거 참 중요한 질문이네요.' 하며 설명해주셨다.
제가 재언님께 존대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는 젊은 날의 내가 말을 함부로 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영업팀에 있을 초기에는 나도 반말을 했어요. 하지만 반말을 하니 어떤 상황에서는 참 말이 함부로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누구든지 간에 존대를 하기로 맘먹은 겁니다. 둘째로는, 음.. 특히 재언님과 같은 여 직원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회사에서 여 직원에게 반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동등한 동료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로 존대를 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나는 즉시 이 부장님의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이 부장님과는 직급과 나이를 떠나 참 사이좋게 잘 지냈다. 상호 존대를 하면서도 농담도 상담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퇴사하던 날 퇴사 선물로 스타벅스 카드를 주셨는데, 거기엔 포스트잇에 투박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재언 대리님, 함께한 시간들이 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앞날에 행복과 행운이 넘치시길 기원합니다. 이 부장 드림.
이 부장님은 그런 분이셨다. 나를 존중으로 대해주시던 이 부장님이 생각나는 날이다. 오늘 저녁에는 안부 카톡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