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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언 Jun 19. 2020

회사가 회사원에게 허락한 마약

월급 그리고 금요일


1. 월급 [명사] 한 달을 단위로 하여 지급하는 급료. 또는 그런 방식.



기업들은 구직자에게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구체적인 지원동기 작성을 요청한다. 구차하지만 나도 MSG를 좀 친 스토리텔링을 구사해서 여기에 입사하긴 했다. 동반성장이 어쩌구, 자아실현이 어쩌구 뭐 그런 거. 하지만 솔직한 지원동기는 대부분 돈이 아닐까. 돈이 자주 없으면 자주 난처한 자본주의 세계니까 말이다. 때문에 회사원이 된 나는 매월 25일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여에 중독되고 말았다. 추고 앵꼽더라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근하는 이유는 사실 여기 있는 거다. 이 돈으로 적금도 넣고, 월세도 내고, 카드값도 갚고, 보험도 들고, 핸드폰 요금도 내고, 핫플가서 커피도 사 마신다. 이렇게 신나게 빠져나가다 보면 20일쯤 되면 현금잔고가 간당간당하다. 스스로 지출 계획을 타이트하게 짜 놨으면서 25일 만을 애달프게 기다린다. 회사는 나에게 25일 단 한 번의 월급을 지급하지만, 그게 주는 파장이 너무 큰 나머지 나는 한 달을 이런 싸이클로 살아간다. 그 효과와 중독성에 있어 가히 엑스터시에 버금간다고 하겠다.


Note 1) '고 앵꼽다'는 사투리이며 '더럽고 아니꼽다'로 해석하면 된다.

Note 2) 나는 엑스터시를 해본 적이 없다.


영화 <돈> 포스터 속 류준열 배우



2. 금요일 [명사] 월요일을 기준으로 한 주의 다섯째 날.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이 일련의 현상을 '금뽕'이라 부른다. 우아한 표현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거 말곤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금요일이 너무 좋다. 그 날 하루만 무사히 넘기면 나에겐 이틀 간의 휴일이 주어지니까! 금요일의 설렘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금요일 모닝커피는 반드시 스타벅스의 돌체라떼로 주문한다. 혈당과 텐션을 급상승 시키는 나만의 경건한 금요 의식이다. 감사하게도 회사는 금요일을 '가족 사랑의 날'로 지정하여 5시가 되면 땡퇴를 유도하는 안내방송도 해준다. 정말이지 TGIF인 거다. 그 텐션이란 것은 금요일 4시 55분에 폭발해 버리고 만다. 5시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를 외치면서 퇴근하는 그때의 쾌감을 금뽕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지난주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설계팀의 남 대리를 금요일 5시 퇴근길에 만났다. 평소에는 업무에 꼭 필요한 말과 리액션만 하던 내가 금뽕 탓에 그만 조잘조잘 떠들어 대고 말았다. 헛소리도 한 것 같은데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남 대리의 큰 백팩을 보고 보부상이라고 놀렸었던가.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렴 상관이 없다. 금요일은 사랑이니까!


금뽕의 촉매제, 스타벅스 돌체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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