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던 날들의 기록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부장은 유명했다. 손과 발이 없기로도 유명했고, 여사원 사이에서도 피해야 할 인물로 유명했다. 본인 차의 세차나 워셔액 주입은 김 대리의 일이었고, 뷔페에서 조차 엉덩이를 떼는 법이 없어서 정 과장이 가져다 바친 음식을 맛이 있네 없네 하며 먹을 줄이나 아는 손과 발이 없는 인간 유형이었다. 또한 못 배운 건지 잘 못 배운 건진 모르겠으나,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는 덜 떨어진 인간 유형이었다. 당시 이 부장은 우리 부서의 부서장이었으며, 성희롱 신고센터 역시 부서장이었다. 거지발싸개 같은 말을 듣고도 신고하는 것보다 피했던 건 비논리적인 성희롱 신고 체계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현재는 전담 부서가 생겨 신고 채널이 일원화되었다.) 옆 팀의 박 사원 언니에게는 농담 삼아 오피스 와이프가 돼 달라고 했고, 유난히 피곤해하는 나에게는 어젯밤 남자 친구와 뭘 했기에 피곤해하냐며 묻기도 했다. 단추가 많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내게 단추를 하나하나 누르며 잘 잠그고 다니라고도 했다. 물론 단추는 가슴께에도 달려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두려움이 많았다. 저항할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지며 무기력과 우울감을 다소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일 아침 야드를 지나 오피스로 가는 길에 내 어깨나 무릎 정도에 작은 너트가 떨어지길 기도했다. 크게 다치지는 않지만 출근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길 바라고 또 바랬다. 물론 3년간의 첫 번째 조직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누나, 이 상무 인사위원회 회부된대요!"손과 발이 없던 이 부장의 목까지 날아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부장은 그 사이 상무가 되어 있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 악질이 되어갔나 보다. 이 상무 밑에서 일했던 몇몇의 직원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늘 이 상무의 악행이었고 감격스럽게도 권선징악을 함께 목도할 수 있었다. 이 상무는 술자리에서 여 사원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고, 여 사원이 고소를 했고,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고, 잘렸다. 나는 같이 일했던 친구들을 불러 피자를 사 먹였다. 일종의 파티 혹은 퇴마의식처럼. 우리는 맥주까지 시켜 '그 날'을 기념했다. 하지만 이 상무의 해고가 내가 생각한 것만큼의 해피엔딩은 아니었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기사가 날 만큼 물의를 일으킨 이 상무였지만 상무의 '끕'을 고려하여 의원 사직 처리된 것이다. 제 발로 나간 것처럼 기록에 남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또한 전사에 이 상무의 악행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은 여 사원의 품행과 인적사항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형태를 바꾸어 갔다. 이름을 묻고 소속을 묻고 심지어 얼굴을 궁금해했다. 불합리에 정당하게 대응했던 여 사원의 용기가 다른 이들에겐 그저 호기로움 정도로 느껴졌던 걸까. 용기를 낸 피해자는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다시 한번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해당 여 사원은 타 사업부로 지원하여 전출하였고, 개명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