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대리는 일과 삶을 대단히 잘 분리하는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엔지니어들만 있는 이 곳에서 일의 성격과 가장 이질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남 대리는 아마추어 배우였다. 남 대리의 공연을 보러 간 건 단순히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퇴근 후 자신의 삶을 누리는 모습을 훔쳐보고 싶었다. 일과 시간에는 회사원으로 퇴근 이후에는 오롯한 자신의 모습으로 지내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부캐의 시대이다. 유재석과 유산슬, 김신영과 김다비, 이효리와 린다 G처럼. 남 대리와 남 배우의 그 간극을 목격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남 배우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어지간한 연기력으론 맡지 못한다는 멀티맨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회사에서 보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에 어색하기도 했지만 곧 공연에 빠져들어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는 남 배우가 본캐이고 남 대리가 부캐인 것처럼 느껴질 만큼.
어쩌면 우리는 모두 회사에서 다른 캐릭터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근한 예로 나 역시. 회사원 이재언은 대체로 조직 순응적이고 조용하며 감정 변화가 적다. 하지만 퇴근 후의 이재언은 삶에 능동적이고 관심사의 폭도 넓으며 감정에 예민하다. 어떤 것이 나의 부캐와 본캐인지 잘 모르겠지만 둘은 콜라보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한 때는 회사원인 나와 인간 나의 간극을 참기가 어려웠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불편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부캐의 시대고, 본캐와 부캐는 간극을 두고도 공존할 수 있음을 안다.
오늘도 회사원 옵션을 장착하고 출근한다.
남대리님의 공연 티켓
퇴근인사에대한주관적인고찰
사전적 의미를 따져보자면 '인사'란 명사로,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 예를 표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이라고 명시되어있다. 국어사전 상 중요도가 높은 단어로, 사회생활에서도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회사원이 사용하는 인사는 주로 출근 시에 하는 출근 인사, 퇴근 시에 하는 퇴근 인사, 수시로 오가는 목례 정도가 있으며 이 중 언어와 함께 사용해야 하는 것은 출근인사/퇴근인사이다.
출근인사는 대체로 평이하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가 무난하고 적당하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편감 없이 사용한다. 문제는 퇴근인사인데, '정시퇴근'에 대한 부담감이 빚어낸 이상한 말들을 쓰는 것이 발견된다.
우선 우물쭈물거리며 "먼저 가보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타입. (당연히) 갈 시간인데 내가 마치 선약이 있어 먼저 가보겠다는 듯한 과한 배려의 말이 싫었고, 그에 뒤따르는 저자세의 제스처도 싫었다. “ 퇴근하겠습니다"를 쓰는 타입도 꽤 된다. 그런데 곧 그 워딩도 별로란 생각이 들었다. 인사라기 보단 보고서 같은 투라서 일까. 조금 드문 케이스인데, 최 대리는 곧잘 "안녕히 계세요"란 다정한 인사를 하곤 했다. 청자인 내가 퇴근을 포기하고 마치 회사에서 숙식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었다.
최종적으로, 나의 픽은 "내일 뵙겠습니다"였다. '나는 가보겠으니 오늘의 만남은 여기까지만 하시죠'란 뉘앙스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에 '딱히 보고 싶진 않지만'이 생략되어 있지만.
금요일 버전으로는 "주말 잘 보내세요"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눈인사나 윙크 등의 사례도 있는데, 이는 퇴근 후 한잔을 뜻하거나 사내 연애 중인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