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메일에는 딱히 진심은 아닌듯한 무미건조한 축하 문구와 함께 건강검진 안내서가 동봉되어 있었다.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도 몰랐으면서 그저 뛸 듯이 기뻤다. 월 200 남짓의 월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우선 기뻤으며 흔들리는 취준생의 삶을 청산하게 되는 것이 또한 기뻤다. 내 증명사진이 들어간 사원증을 목에 걸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짐짓 흥분감을 느끼기도 했다. 계약직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다소 아쉽기는 했으나 소속감이 생긴다는 것이 어쨌거나 저쨌거나 기뻤다.
해도 티가 안 나고 안 하면 티 나는 잡무라든지, 각종 세금을 떼고 나면 작고 귀여워지는 실수령액 이라든지, 취준 때 보다 큰 정신적 피폐함이라든지 하는 개념은 당시 내 머릿속엔 없었다. 과한 포토샵으로 한껏 부자연스러워진 사원증 속 내 모습만큼이나 내 회사생활도 부자연스러우리란것도, 예상치 못했다.
어쨌든, 내가 드디어 회사원이 되었다. 취뽀! 내 나이 스물일곱의 일이었다.
첫 사원증을 받았을 때는 알지 못했던.
소모품으로의 삶 (feat. 계약직)
입사 후 가장 먼저 대화를 나눠본 건 부서의 서무를 맡고 있는 이 사원이었다. 이 사원은 당시 파견직으로 근무 중이었다. 2년 간 리쿠르트 회사 소속의 파견 사원으로 일하고, 그 후 2년은 회사의 직계약으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4년간의 직급은 사원이며, 4년 만기 퇴사 후에는 재입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 역시 프로젝트 계약직으로 입사한 터라 이 사원의 설명이 예사롭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와 같은 프로젝트 계약직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했다. 배속된 프로젝트가 끝날 때 까지가 계약기간이다. 물론 두 가지 형태의 계약직 모두 2년 이상 고용 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법을 교묘하게 벗어나기 위한 꼼수식 채용이다.
그놈의 '노력'이 부족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수십, 아니 백 장은 훨씬 넘는 내 지원서를 내동댕이 쳤을 때 나를 받아준 건 계약직이라는 애매한 채용형태뿐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속했던 조직의 특성상 길게는 5~6년짜리 장기 프로젝트가 대다수였고 경력이 차면 (협의하에) 진급도 가능했다. 그리고 대단히 불행하게도 프로젝트 만료일, 즉 나의 계약 만료일을 정확히 알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나는 프로젝트에서 10일 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어느 날, 이 사원과 나눈 대화가 기억이 난다. "이렇게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사는 거 되게 A4용지 같은 느낌이지 않아? 소모품 같은 거랄까?" 내가 먼저 물었다. "넌이면지로라도써주잖아, 난그냥단면복사용지야." 이 사원이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로도 대꾸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