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었다. 부서 공용 냉장고의 개인 식품들이 자꾸만 사라졌다. 보통은 방치 금지 목적으로 음식에 이름을 써서 보관한다. 유통기한이 지나버리거나 상했을 때 보관한 사람이 치워야 하니까. 그런데 그 부서에서는 제발 제발 훔쳐가지 말라고 이름을 써서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해야 했다.
많은털림을당하며알게된것은,
1) 달랑 이름만 적은 식품은 여지없이 털린다는 것
2) '먹지 마시오!'라고 적어두면 안 털린다는 것
3) 상대적으로 건강식품이 주로 털린다는 것이었다.
당도는 높으면서 영양가가 없는 주스나 크림빵 같은 건 범인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부서원들이 식사 대용으로 먹는 식품이나 즙 따위가 주요 타깃이었다. 안타깝게도 내 그릭 요거트와 양파즙도 범인의 취향을 저격했다.
시간이 지나자 대범해진 범인은 공용 냉장고에 이어 공용 식품 횡령까지 자행했다. 부서비로 구매한 스틱커피와 유자차 등을 새로 꺼내 놓으면 하루도 안되어 많은 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서 인원이 많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유리병에 담긴 그 끈적한 유자차는 어떻게 훔쳐가는 건지하루새 반통이 넘게 비어있던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범인 색출에 열을 올렸지만 나중에는 다들 혀를 내둘렀다. 찾아낸다 한들 마땅한 징계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1) 월급이 적어서 그런 것이다!
2) 불쌍하니 이해해주자!
3) 개인 식품에는 '먹지 마시오'라고 반드시 쓰자!
나 원 참. 다시 돌이켜 봐도 어이가 없다. 지금은 퇴사를 해서 근황을 잘 모르지만 그 범인이 아직도 그 공용 냉장고를 잘 털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