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36분에 기상하여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여 사무실에 도착, 가장 먼저 이메일을 확인한다. 점심시간에는 5,300원짜리 식사를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10시간 55분을 회사에서 보낸 후 6시에서 7시 사이에 퇴근한다. 퇴근 후 티비시청을 하다가 12시께에 취침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정형화된 조직인 회사라는 곳에 입사하는 순간 수많은 '평균'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 업무양식에 있어서도 생활양식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대개', '보통은', '원래는' 등의 부사를 참 많이도 쓴다. 평범하고 조직 순응적인 내가 이 평균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지사. 다만나의 머리스타일과 복장과 행동까지도 비가시적이고 관습적인 평균에 수렴하기를 원할 때 나는 가벼운 부담감을 느낀다.
어느 여름날, 단체메일을 수신한 기억이 난다. 그것은 마치 발가락에 대한 일종의 경고장처럼 보였다.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을 신을 시 각 출입문에서 제지를 받을 수 있으며, 회사는 바캉스를 오는 곳이 아님을 유념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전에도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을 신고 다니진 않았지만) 그 메일을 수신한 이후 괜히 신발이 신경 쓰였다. 이 신발은 색깔이 너무 화려한가, 이 신발은 너무 또각또각거리는가 등등. 결국 나는 앞뒤가 꽉꽉 들어 막힌 검은색 닥터마틴을 여름 내 신기로 했다.
회사는 복장 규정을 '비즈니스 캐주얼'로 지침 했다. 복도에는 비즈니스 캐주얼의 예시 사진과 함께 상세 규정이 게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동료의 눈에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였다. 과연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혹시 나의 이 평범하디 평범한 흰 셔츠와 블랙 슬랙스도 누군가의 눈에 거슬린다면 복장 규정 위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이렇게 '남의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나에게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옆 팀의 한 대리가 어느 날 긴 생머리를 애쉬그레이로 염색하고 나타난 것이다. 조용했던 사무실은 한 대리의 출근과 동시에 잠시 술렁였다. 이후 한동안 한 대리는 '본관 엘프'로 회자되었다. 궁금해진 나는 한 대리에게 염색의 이유를 물어봤었다. 한 대리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냥 서른 되기 전에 한번 해보고 싶었어." 그렇다, 헤어스타일에 대한 규정은 없었고, 염색은 그저 취향의 영역이었다. 나 역시 나만의 평균 잣대로 동료를 눈에 거슬려 하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평균의 눈치를 보지 않는 한 대리가 그 날 참 쿨하고 멋져 보였다.